피땀 나는 노력으로 회사를 건실하게 키운 한 오너 경영자가 필자를 찾아왔다. 세련된 매너와 단단한 이미지를 가진 그는 불의를 고발하는 뉴스를 접하게 되면 지나칠 정도로 화가 나고 심지어 자신이 직접 나서 응징하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고 했다. 범법자들이 자신에게 직접 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자신이 생각해봐도 분노의 정도가 부적절하게 크다고 호소했다.

"특별히 고생한 것도 없이 자리와 부를 승계해 파워를 휘두르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나서 참을 수 없다"고 했다. 그 연장선으로 사람 자체가 싫어지고 점점 모임을 피하게 된다고도 했다. 업무상 '을'의 입장에서 '갑'으로부터 당한 자존심 상한 기억들이 분노 에너지로 축적돼 못마땅한 사회적 뉴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자존감의 상처'는 누구나 안고 있는 문제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성취해도 자존감 계기판에 빨간 경고등이 켜지고 감성 엔진이 과열되기는 마찬가지다. 진정 위로를 받아야 할 대상이 사람인데 서로 자존감에 상처를 주는 세상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사람의 위로를 대신하는 애완동물 비즈니스만 번창할 수밖에 없다.

자존감(self-esteem)은 미국의 의사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가 1890년대에 처음 사용한 용어다. 자존감의 상처가 우울증으로 이어지고 자살에 이르게 된다는 게 그의 견해였다.

자존감은 근사함과 같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성공했다고 평가할 고위 공무원 또는 대기업 임원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 "자신이 근사하다고 생각하시는 분 손들어주세요"라고 불쑥 질문을 던져보면 손을 드는 사람이 아예 없다. 얼굴 표정을 보면 쑥스러워서 손을 못드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느껴 반응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존감은 다분히 주관적이며 자신에 대한 평가다. 자존감 수치가 떨어져 경고등이 들어온다고 해도 실제로 내가 엉망인 사람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자존감 계기판의 수치에 따라 낙담하고 우울해하기 일쑤다. 자존감은 '내가 이룬 것'에서 '내가 목표로 한 것'을 뺀 값이 클수록 높아진다. 자신의 목표가 지나치게 높으면 이 수치가 마이너스로 떨어져 자존감을 느끼기 어렵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가정 학교 직장에서 치열하게 노력해온 사람일수록 자존감은 떨어진다. 일단 달성한 목표는 순식간에 상향 조정돼 자존감을 느끼는 것은 잠깐이고 더 높은 목표를 위해 또다시 자신을 몰아세우기 때문이다.

결국 목표를 낮추는 게 대안이다. 자신의 성취와 상관 없이 목표를 낮게 잡고 사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겸손한 사람이 성취를 덜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목표가 낮기에 작은 성취에 만족하고 주변의 비판에도 자존감 시스템이 안정을 유지한다. 이 때문에 길게 보면 지속적으로 성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

목표를 낮추자는 게 1등할 것을 2등에 만족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회적 지위가 곧 자신의 가치라는 속물적 가치관에서 자유로워지자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좋은 리더는 누구일까. 자신의 지위에 고개 숙이는 사람들을 보며 얄팍한 자존감을 세우기보다는 이를 경계하고 본질적 가치에 충실하며 자신의 목표를 낮추는 '기능적 겸손'을 실천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윤대현 <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