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걷기 열풍을 불러온 제주 올레길.아름다운 바다와 늘 푸른 풀밭,오름과 정겨운 돌담길을 걸으며 제주의 풍광과 문화,삶을 느끼는 명품 걷기 코스다. 하지만 한낮의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는 여름엔 좀 힘들 수도 있다.

이럴 땐 지난 4월 말 공개된 한라산 둘레길을 걸어보면 어떨까. 해발 600~800m의 한라산 중턱 환상(環狀)의 숲길을 걷는 이 길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제주신라호텔 GAO(Guest Activity Organizer) 오권석 지배인(45)과 함께 한라산 둘레길을 찾아나섰다. GAO는 호텔 투숙객들의 레저 · 엔터테인먼트 활동을 도와주는 전문가다.

◆역사와 자연,삶의 흔적 간직한 옛길

한라산 둘레길은 한라산 중턱의 국유림 일대를 둘러싸고 있는 일제강점기 병참도로(일명 하치마키도로)와 임도,표고버섯 재배지 운송로 등을 활용해 서귀포자연휴양림,돈내코청소년수련원,사려니숲길,한라생태숲,관음사 야영장,천아오름 수원지,노로오름,돌오름 등을 연결하는 길이 80㎞의 숲길이다.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고 옛 역사도 담기 위해 일제시대 병참용 도로와 표고버섯 운송로 등을 최대한 활용했다. 나머지 구간은 2014년까지 개통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법정사~돈내코계곡을 연결하는 제1구간 9㎞ 중 국립산림과학원 난대림연구소의 시험림 구간을 제외한 7.7㎞가 먼저 공개됐다. 1코스는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의 중심지였던 법정사와 4 · 3사건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주둔소,화전민이 살던 집터와 숯가마,동백나무 · 편백나무 군락지 등이 어우러져 있어 한라 숲의 생태와 역사,삶을 배울 수 있다.

◆모자가 필요 없는 숲길

중문단지에서 출발해 한라산 1100도로(1139번 도로)로 접어들어 잠시 달리자 오른쪽에 법정사 이정표와 함께 '한라산 둘레길 2.2㎞'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이정표를 따라가니 길이 끊어진 곳에 '무오 법정사 항일운동발상지' 안내판이 나온다. 무오 법정사 항일운동은 기미년(1919년) 3 · 1운동보다 5개월 먼저 일어난 제주도 내 최초 · 최대의 항일운동이자 1910년대 종교계가 일으킨 전국 최대 규모의 무장 항일운동이다. 여기서 산길로 접어들면 완전히 딴 세상이다. 무오 법정사 항일운동기념탑까지는 포장도로로 이어지지만 숲은 햇볕을 가릴 만큼 울창하다. 기념탑을 지나 조금 걷다 보니 오른편에 제주도 화산석으로 기둥을 세운 둘레길 관문이 서 있다.

둘레길 관문을 들어서면 '환상숲길 제1구간 동백길'이라는 이름 그대로 동백숲이 3㎞ 가까이 이어진다.

◆굼벵이보다 빠르게,황소보다 느리게

둘레길은 단조롭지 않다. 낙엽이 쌓여 푹신푹신한 길이 있는가 하면 진흙길도 있다. 바닥에 돌이 깔린 길은 일제강점기 병참로였던 하치마키도로다. 평탄한가 하면 비올 때에만 흐르는 건천이 군데군데 있어서 굴곡을 만든다. 또 4 · 3사건의 주둔소였던 자리에는 돌로 쌓은 담장들이 그대로 있어 아픈 역사를 반추하게 한다.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적송과 황칠나무 군락지도 탐방객을 맞이한다. 강정천 등 4개의 하천 중 마지막인 악근천 상류 계곡에서 바라보는 시오름의 자태가 늠름하다. 1구간의 마지막쯤에선 편백나무숲이 향기가 은은한데 시오름에서 돈내코계곡으로는 갈 수 없다. 난대림연구소의 시험림이 있어 통제구역이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시오림에서 1115번 도로를 향해 내려오니 1구간의 끝이다. 통상 1구간은 2시간30분~3시간가량 걸린다는데 사진을 찍고 느릿느릿 걸으니 3시간 반이 걸렸다.

오 GAO의 말이 명언이다. "굼벵이보다는 빠르게 황소보다는 느리게 걸으세요. 그러면서 숲을 느끼세요. "


◆ 여행 팁

한라산 둘레길로 가려면 제주시외버스터미널이나 중문삼거리에서 1100도로행 버스를 타면 된다. 버스기사에게 둘레길 이정표 앞에 내려 달라고 하면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시오름에서 1115번 도로로 내려오면 버스가 없으므로 시오름에서 출발점인 법정사 입구로 되돌아가는 편이 낫다. 중문단지에서 서귀포 콜택시(064-762-0100)를 이용해도 된다. 비오는 날이나 비온 뒤 이틀 동안은 출입이 통제된다. 제주신라호텔은 투숙객을 대상으로 매주 월요일(오후 2~6시)과 금요일(오전 9시~오후 1시) GAO가 안내하는 '한라산 환상의 숲길' 트레킹을 실시하고 있다. 요금 2만원.쿠키와 감귤,생수,커피 등을 제공한다.


제주=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