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중수부 폐지' 입법이 능사 아니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의 검찰관계법소위원회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능을 폐지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을 두고 당사자인 국회와 검찰은 물론 사회 일반의 여론까지 뒤숭숭하다. 대검 중수부란 곳이 사람 불러 상주는 곳이 아니라 잘못을 캐내 처벌하는 곳인 만큼 도처에 적을 많이 만들고 원성이 누적됐으리라는 건 누구나 안다. 일이란 여간해선 칭찬받지 못하지만 욕 먹기는 쉬운 법인데,하물며 사람을 불러 수사하고 처벌하는 기관이야 두말할 나위 없다.

그래서 이번 사개특위 소위원회의 결정을 보면서 고소해 하는 사람들도 꽤 되는 것 같다. 살아있는 권력엔 약하고,죽은 권력엔 강하다는 지적이 아주 일리가 없지 않고,당사자에게 치명적인 피의사실을 미리 흘려 수사와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여론 재판으로 망신을 주는 일이 드물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그런 정서를 마냥 나무랄 수만은 없다.

그러나 서양 속담 중에 '목욕물을 버리다가 아기까지 버린다'는 말처럼 일부 관행이 밉다고 지금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법적 견제와 정의의 뿌리까지 뽑을 수는 없다. 북한인권법 하나 둘러싸고 수년간 첨예한 대립을 해왔던 여야가 중수부의 수사권 폐지에 쉽게 합의한 이면에 굳이 국회의원들의 세비 인상이나 퇴직 후 수당 지급에 관한 담합의 역사까지 연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수부의 주고객이 일반 서민과는 거리가 먼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대형 기업 비리 사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여야의 모처럼 찰떡 궁합이 순수하게만은 보이지 않는다.

사실 지금 대검 중수부는 검찰청법이 아닌 대통령령인 검찰청사무기구에 관한 규정에 그 설치 근거를 두고 있다. 검찰청법 제16조는 대검찰청에 부와 과를 두되,그 설치와 분장사무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위 규정 제6조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중앙수사1,2과 및 첨단범죄수사과를 두고 중앙수사부장과 수사기획관 1명을 배치하며,각 과는 검찰총장이 명하는 범죄사건 및 그와 관련된 사건을 수사하도록 하고 있다.

지금 국회 소위에서 논란을 벌이는 중수부의 수사권이 그렇게 문제된다면 국회가 나설 일이 아니라 그냥 국무회의에서 대통령령을 개정하면 한 번에 해결된다. 그럼에도 여야가 의기투합해서 내린 결정은 하위 법령을 끌어내 법률로 못 박자는 것으로 과잉입법의 소지가 있다. 청와대가 이 문제에 관해 신중한 대처를 요구한 것을 두고도 정치권에서는 볼멘소리를 하는 모양이나 이는 직접 당사자로서 당연한 의견 표명이다.

일을 하지 않아서 권한을 빼앗는 것과,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의 일부 미숙한 잘못,나아가 그 방식이 맘에 안 든다고 권한을 빼앗는 것은 다르다. 그렇게 하기로 치면 국회도 만만치 않다. 대의 민주주의 하에서 입법권은 무소불위가 아니다. 위임받은 권력은 위임한 권력보다 클 수 없다. 더구나 중수부의 수사권 박탈이 수임자인 국회에 대한 사법적 견제 기능을 무장해제시키는 의도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종이 주인의 매를 빼앗는 격이 돼,위임한 국민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 더 헌법적 이념에 부합한다. 이는 자기 이해관계가 달린 일은 수임자 스스로 처리할 수 없다는 위임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에도 배치된다.

2010년 국제투명성 기구에서는 나라별로 정치인과 공무원의 부패지수를 조사해 발표한 바 있다. 대상 50개국 중 우리나라는 10점 만점에 5.4점으로 39위를 기록했다. 잘못된 수사관행을 고치는 건 별론으로 하고,대검 중수부가 여전히 수사권을 갖고 있어야 할 이유다. 신뢰와 법치는 무형의 사회적 자원이다. 지금까지 대검 중수부의 수사권이 이런 무형의 자원을 유지,형성하는데 별 도움이 안 됐거나 해가 됐다면 사개특위의 결정이 맞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지 않은가.

이호선 < 국민대 교수·법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