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자산관리공사는 얼마 전 인턴 채용 공고를 내며 '인사 청탁자는 전형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문구를 명시했다. 쏟아져 들어오는 채용 청탁을 조금이라도 막아보자는 취지에서다. 그래도 힘깨나 쓰는 사람들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올 상반기 대학생 인턴 채용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대기업과 금융회사들이 밀려드는 청탁에 홍역을 치르고 있다. '앞문' 정규직 공채보다 '뒷문' 인턴 경쟁이 더 뜨겁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돈다.

인턴 경력이 중요한 취업 스펙(학점 · 영어능력 · 자격증 등 채용 평가 요소)이 되면서 웬만한 기업들은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 두 차례씩 이 같은 인턴 채용 전쟁을 치르고 있다. 대기업과 금융회사의 인턴 경쟁률은 20 대 1을 넘나든다.

인턴 근무 우수자를 정규 직원으로 채용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것도 '뒷문 청탁'과 낙하산이 난무하는 요인이다. 삼성전자와 현대 · 기아자동차,SK 등은 70% 정도의 인턴을 정규 직원으로 전환하고 있다. 우리은행 기업은행 등 금융권에서는 20% 정도를 정식 직원으로 뽑는다.

청탁하는 쪽에서 "정식 채용도 아닌데…"라며 부담을 덜 느끼는 것도 인턴 채용 민원이 많은 이유다. 대기업 관계자는 "정규직 공채 때보다 인턴을 뽑을 때 오히려 부탁이 더 많이 들어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막무가내식 청탁이 특히 많다"며 "서류전형을 통과시켜 주더라도 필기시험에서 떨어지면 어쩔 수 없는데도 (상대편에서) '무시하냐'며 화를 내기도 한다"고 전했다.

인턴 전쟁의 부담은 대기업보다 금융회사나 공기업 쪽이 더 큰 것으로 알려졌다. 상시 감독을 받는 업종 특성상 정부와 정치권 등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데다 고액 자산가 등 고객 민원도 극성이다.

금융회사 인사팀 관계자는 "외국계 금융사 중에는 정식 채용을 위한 인턴과 유력 인사나 VIP 고객 자녀들을 위한 인턴을 아예 따로 뽑는 곳이 많다"며 "외국계 투자은행 등의 인턴 경력은 다른 회사 취업 때 상당한 가점을 받는 점을 의도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대학생 사이에서는 인턴이 되는 데는 토익 만점에 학점 4.5보다 '집안 빽'이 최고라는 얘기가 나온다. 대학생 A씨는 "누구나 선호하는 기업이나 금융회사 인턴은 '인맥'과 '빽'으로 미리 결정되는 게 아닌가 한다"고 했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