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쌀 시장 조기 개방'계획을 사실상 백지화했다.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는 대신 매년 2만여t씩 쌀 수입량을 의무적으로 확대'하는 것을 폐지하고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쌀 시장을 조기 개방하려던 계획을 포기한 것이다.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도하개발 아젠다(DDA) 등 통상 문제에서 한국의 협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는 데다 2015년이면 자동으로 쌀 관세화로 전환하기 때문에 실익이 크지 않다는 게 이유다.

농림수산식품부 고위 관계자는 14일 "최근 개각으로 장관이 바뀐 이후 농식품부 내부에서 쌀 조기 관세화 논의를 중단했다"며 "여러 가지 상황을 놓고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예정대로 (쌀 관세화를) 추진하는 것은 무리라는 게 내부 결론"이라고 말했다.

서규용 농식품부 장관도 지난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조기 관세화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여러 문제가 겹쳐 올해 할 수 있다,없다는 말은 못 한다"며 쌀 관세화 무산 가능성을 시사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2014년까지 매년 2만t씩 쌀 수입량을 의무적으로 늘려야 한다. 농식품부는 올해 초 쌀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의무 수입 물량을 더 늘리지 않기 위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쌀 시장을 앞당겨 개방하는 쌀 관세화를 '2011년 업무계획'에 포함시켜 추진해왔다.

이 계획대로 내년에 쌀 관세화를 시작하려면 오는 9월까지는 농민단체와의 협의를 거쳐 세계무역기구(WTO)에 수정이행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계획조차 잡혀 있지 않은 상태다.

농식품부는 쌀 관세화 정책을 사실상 백지화한 이유로 DDA 협상과 한 · 미 FTA 비준 과정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들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쌀 관세화를 하면 한 · 미 FTA 재협상의 빌미를 줄 수 있어 내년 선거를 앞두고 쇠고기 협상 때처럼 여론이 시끄러워질 수 있다"며 "정부도 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내년 양대 선거를 앞두고 여론을 의식해 자발적으로 쌀 관세화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서 장관은 취임 이후 전임 장관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농업 보조금 개혁도 없던 일로 했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