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 제품의 유통 경로를 추적할 수 있는 전자태그(RFID) 도입을 놓고 제약업계에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제약사는 재고 관리와 가짜 의약품 근절에 유리하다며 도입을 반기는 반면 일부 의약품 도매상은 불투명한 유통 관행이 드러날까봐 불편해하는 분위기다.

최근 한미약품과 일부 도매상의 마찰이 대표적이다. 11일 지식경제부와 제약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은 수개월 전 일부 도매상이 병원에 납품하겠다며 싸게 받아간 의약품 중 일부를 약국에 비싸게 넘긴 사실을 적발,해당 도매상에 주의를 줬다. 제약사들은 보통 병원용 의약품을 일반용보다 싼 값에 공급한다. 이에 따라 도매상이 병원용 약 수요를 부풀린 뒤 이 중 일부를 약국에 넘기는 관행이 적지 않았다.

과거에는 제약사들이 심증이 있어도 물증을 잡기 힘들었지만 RFID가 도입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한미약품은 작년 9월부터 470여종 6000만개에 달하는 자사 모든 의약품에 RFID를 붙이고 있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제품 하나하나에 일련번호가 붙어 관리되기 때문에 병원에 주기로 한 약이 약국에 흘러들어가는지를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매상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한미약품의 주의를 받은 일부 도매상은 "앞으로 병원에 납품할 땐 한미약품을 빼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제약사가 병원에 납품하려면 반드시 도매상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지경부가 2015년까지 전체 의약품의 50% 이상에 RFID를 붙인다는 방침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어 FRID 도입은 시간문제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지경부 관계자는 "과거 국세청이 가짜 양주 단속을 위해 양주병에 RFID를 붙였을 때도 주류 도매상들이 반발했지만 지금은 반발이 거의 없다"며 "시간이 지나면 제약업계에서도 RFID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경부가 RFID 도입을 서두르는 이유는 가짜약 근절이나 리베이트 관행을 없애는 데 유리하다는 이유에서다. 지경부는 RFID를 도입한 제약사에는 투자액의 7%를 세액공제하고 RFID 시스템 구축비 일부를 지원할 예정이다.

현재까지 RFID를 도입한 제약사는 7곳이다. 한미약품이 2009년 12월부터 도입을 시작해 지금은 전 제품으로 확대했고 일동제약 한국콜마 경동제약 CJ 유니메드 아이월드는 일부 제품에 RFID를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형 제약사는 아직까지 참여를 꺼리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비용이다. 부착 비용이 거의 없는 바코드와 달리 RFID는 개당 가격이 50~60원에 달한다. 지경부 관계자는 "병원용 조제약의 경우 개당 비용이 100~200원에 달하는 것도 많다"며 "RFID가 보다 확산되려면 가격이 개당 10원 정도로 내려가야 한다는 게 제약업계의 분위기"라고 말했다.


◆ RFID

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device.개별 제품에 초소형 칩을 붙인 뒤 전파를 이용해 먼 거리에서 정보를 인식하는 기술로 전자태그로도 불린다. 바코드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다. 고속도로 하이패스,교통카드,전자여권,전자 출입증 등이 대표적 적용 사례다. 유통 분야에선 주류업계와 제약업계가 도입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