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분석을 하거나 투자유망종목을 발굴할 여유가 없습니다. 하루 일과의 70% 이상을 영업에 쏟아야 하는 게 애널리스트들의 현실입니다. "

최근 만난 한 대형 증권사의 리서치센터장은 이 같은 하소연을 늘어놨다. 그는 애널리스트들을 기업분석 등 본업보다 영업현장에 내몰고 있는 주범으로 4월1일부터 도입한 '소프트 달러(soft dollar)제도'를 지목했다. "증권 관련 제도 중 가장 엉터리"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소프트 달러'란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가 증권사로부터 제공받는 리서치 자료 등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지불하는 비용을 말한다. 보통 해당 증권사에 주문을 내고 위탁매매수수료 형태로 지불한다. 미국 등에서는 투자판단에 도움을 준 증권사에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오래 전부터 합리적 거래로 용인하고 있다.

한국에선 아니었다. 데일리 리포트 등 투자정보를 얼마로 환산해야 할지에 대한 기준이 없어 양측의 거래와 대가지불은 주관적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보니 증권사들은 접대 등 로비경쟁을 불사해 왔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금융투자협회는 이 같은 병폐를 없애기 위해 지난 4월부터 소프트달러제를 도입했다. 취지는 좋았지만 아직은 부작용이 더 크다는 지적이 많다. 소프트달러의 허용기준을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 독점적으로 제공하는 투자정보의 대가'로 한정한 게 문제였다.

증권사는 기관투자가에게 '독점적인 정보와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애널리스트들을 앞세웠다. 시도 때도 없이 기관투자가만을 위한 설명회에 애널리스트들을 불러냈다. 그러다보니 애널리스트들은 기업분석 등을 할 시간이 부족해졌다.

금융위 등은 소프트달러제가 도입되면 궁극적으로 개인투자자도 혜택을 입을 것으로 전망했다. 불투명한 소프트달러 제공관행이 사라지면 수수료 등 투자자 부담이 줄 것이란 근거에서였다. 3개월 이상 지난 지금 증시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반응이 많다. 로비근절 등의 효과는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반면 개인투자자와 기관투자가 간 정보 비대칭성(불평등)만 심화시켰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금융위 등이 기관투자가에게 정보접근의 '특권'을 쥐어주면서 이런 문제를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손성태 증권부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