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좋고 물 좋고 정자까지 좋은 곳이 있겠느냐고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곳도 있다. 경남 함양이다. 북쪽의 남덕유산(1507m),남쪽의 지리산을 비롯해 해발 1000m가 넘는 산이 20여개나 된다. 이름난 계곡도 많다. 국내 3대 계곡의 하나로 꼽히는 지리산 칠선계곡을 비롯해 한신계곡,화림동계곡,부전계곡,용추계곡….이들 계곡에는 농월정 거연정 동호정 등 수많은 정자들이 세워져 정자문화의 보고(寶庫)로 꼽힌다. 함양으로 떠났다.

◆국내 최초의 인공숲 상림

함양읍에 발을 디디면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곳이 상림(上林 · 천연기념물 제154호)이다. 상림은 함양읍 서쪽을 흐르는 위천의 냇가에 자리잡은 호안림(護岸林)이다. 신라 진성여왕 때 고운 최치원이 함양 태수로 있으면서 홍수를 막기 위해 조성했다고 한다.

넓이 21㏊,길이 1.6㎞에 달하는 상림에는 120여종 2만그루가량의 활엽수들이 울창한 숲을 이뤄 햇빛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굴참나무 졸참나무 개서어나무가 주종이지만 작살나무 가막살나무 사람주나무 때죽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을 만날 수 있다.

숲속 곳곳에는 최치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23년 경주 최씨 문중에서 세운 문창후신도비를 비롯해 함양읍성의 남문을 옮겨 지은 함화루,고운 선생을 추모한다는 뜻에서 지은 사운정(思雲亭) 등 문화재도 많다. 이번 장맛비로 아름드리 복자귀나무가 쓰러지면서 문창후신도비 난간 일부가 부러진 채 그대로 있다.

6만6000㎡의 땅에 300여종의 연을 심어 놓은 연꽃단지도 상림의 명물이다. 올해는 이상고온으로 연꽃이 빨리 피는 바람에 벌써 연꽃은 대부분 지고 깔때기 모양의 연밥이 나왔다. 함양군 문화관광해설사 전영순 씨는 "타지로 나간 함양 사람들이 부모형제 못지않게 그리워하는 것이 바로 상림"이라며 "상림은 함양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이라고 했다.

◆정자문화의 보고 화림동계곡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금천(남강의 상류)은 함양군 서상면,서하면을 따라 흐르면서 기암괴석과 연못을 만들었다. 바로 화림동계곡이다. 화림동계곡의 넓은 암반 위에는 2003년 소실된 안의면 월림리의 농월정부터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서 경모정 람천정 동호정 군자정 영귀정 거연정 등의 정자가 세워져 있다.

정자마다 세운 이와,기리는 이의 사연과 선비정신이 깃들어 있다. 거연정 농월정에서는 물아일여(物我一如)의 신선경을 즐기고,군자정에선 일두 정여창의 선비정신을 되새긴다. 예로부터 영남 유림의 본산으로 '좌(左) 안동,우(右) 함양'을 꼽았다. 벼슬보다는 학문과 도덕,충절을 중시한 선비들은 산 좋고 물 맑은 곳에 정자를 지어 시서(詩書)를 논하고 풍류를 즐겼다. 함양의 정자는 《함양군지》에 소개된 것만 해도 150개를 넘고 최근에 지은 것까지 합치면 군내에 195개의 정자가 있다고 한다.

거연정부터 농월정까지 화림동계곡 옆을 따라 나무데크 등으로 조성된 7㎞가량의 '선비문화 탐방로'를 따라 걷노라니 장마도 더위도 딴세상 이야기 같다.

◆개평마을의 고택들

선비의 고장 함양에는 정자뿐만 아니라 고택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지곡면 개평리의 개평마을이다. 조선시대 동방 5현의 한 사람으로 꼽혔던 일두 정여창 고택,1880년에 지은 하동 정씨 고가,구한말 바둑계 1인자였던 사초 노근영의 생가인 노참판댁 고가,풍천 노씨 대종가 등 100여채의 한옥과 도곡서원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일두고택은 TV 드라마 '토지'의 촬영 장소로 유명하다.


■ 여행팁

함양의 음식은 선비정신처럼 담백하고 정갈하다. 지금도 문중이나 집안마다 오랜 전통의 독특한 요리비법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시중에서 함양 하면 떠오르는 음식은 안의갈비다. '안의갈비를 맛보지 않은 사람은 함양에 가봤다고 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1967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안의원조갈비집(055-962-0666)에 가면 갈비탕,갈비찜 등을 맛볼 수 있다. 흑돼지도 함양의 특산물인데 마천면 칠선산장(055-962-5630)은 흑돼지 구이와 지리산 산채정식으로 유명하다. 경상도에서 만나는 전라도 한식집 대장금(055-964-9000)도 있다.


29일부터 함양산삼축제…2015년 세계산삼엑스포

산삼캐기·산삼주 빚기 등 체험행사

지리산과 덕유산 두 국립공원을 끼고 있는 함양은 예로부터 약초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특히 청정한 산간지역에서 키우는 산삼은 전국 생산량의 80%를 차지한다.

작목반과 영농법인 등 53개 단체,450가구가 산삼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함양산삼 매출액은 45억원.올해는 70억~8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함양군이 매년 여름 산삼을 주제로 한 전국 유일의 축제인 함양산삼축제를 열고 2015년에는 세계산삼엑스포를 개최하기로 한 것은 이런 까닭이다.

8회째인 올해 산삼축제는 29일부터 8월2일까지 상림공원과 필봉산 일원에서 열린다. 산삼캐기,산삼화분 만들기,산삼주 빚기,산삼떡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행사와 세계산삼전시관,산삼홍보관,약초전시관 등을 마련한다. (055)960-5174

덕유산 깃대봉이 바라다보이는 서상면 금당리의 함양군 산삼영농법인(055-963-0664) 산삼밭에 가면 1~8년생 산삼이 어떻게 자라는지 비교하며 체험할 수 있다. 간벌한 23만1000㎡의 산비탈에 모종을 포함해 600만그루의 산삼을 키우고 있다.

10여년째 산삼을 키우고 있는 이 영농법인 김경회 대표는 "함양은 전 지역이 유기게르마늄 토양인 데다 해발 800m 이상의 고산지여서 약효가 뛰어나다"고 말했다.

그는 "고산지대에서 모진 풍파와 세월을 견뎌야 하는 만큼 여러 해가 지나도 평지에서 재배한 것보다 산삼 크기가 작다"며 "산삼의 진가는 크기나 값이 아니라 누가 어디서 어떻게 키웠느냐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곳의 산삼값은 5년근 5만원,7년근 8만~10만원, 10년근 이상은 20만~30만원 선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