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4대강 천안함과 강단 좌파들
여름의 서울은 아름답다. 잘 관리된 도시 미학을 보여준다. 늦은 퇴근길에 가파른 남산길을 자전거를 타고 숨이 턱에 차도록 페달을 밟으면 맑은 공기가 폐부를 가득 채운다. 종말론자들이 끊임 없이 저주해대던 서울은 "공기는 더러워 숨쉬기조차 어렵고 한강은 악취와 오염투성이"였어야 했다. 남산에서 달을 볼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사람은 시인들이었고 사이비 과학자들은 그런 경고에 힘을 실었다. 혹시 그것이 궁금한 분들은 오늘밤에라도 남산에 올라 시민들이 야경 찍기에 여념이 없는 한여름 밤의 평화로운 풍경을 구경해보는 것은 어떨는지.

지난주 초까지 퍼붓다시피한 장마였다. 다행히 큰 물난리는 없었다. 4대강 효과 때문이었음은 설명이 필요없다. 6월22일 이후 지난 17일까지 전국 강우량은 642㎜로 예년 평균(249㎜)의 2.5배였다. 강들의 수위는 한강 2.54m,낙동강 3.78m,금강 3.36m,영산강 2.13m나 오히려 낮았다. 흐르는 강들은 평화를 되찾았고 성난 물줄기들은 비로소 길들여졌다. 청와대는 침묵하는 언론들에 적잖이 당혹해하는 표정이지만 세상사는 원래 그런 것이다. 시쳇말로 잘하면 본전이다. 일어나지 않은 일로 칭찬받을 일은 더구나 없다. 홍수가 없었으니 이는 당국자의 덕성으로 남을 뿐이다.

문제는 지금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작은 문제 상황들을 과장하여 미신을 퍼뜨리는 자들이다. 4대강 사업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당연한 명제다. 문제는 이 당연명제에 속할 뿐인 소수의 사례를 들어 4대강 사업 전부를 잘못된 일로 비약시키는 되먹잖은 버릇이다. 당파심에 사로잡힌 오도된 열정 때문이라고 보지만 결국은 합리주의에 대한 불신이며 미신에 대한 맹종으로 치닫게 된다. 일부 지역에 모래가 다시 쌓이고 지류의 유속이 빨라져 제방이 붕괴된 사례들은 4대강 사업의 불완전성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것이 4대강 사업의 불필요성을 증명한다고 비약하면 속임수다. 지류의 유속이 빨라지지 않았다면 더 넓은 지역들에 물난리가 터졌을 것이지만 발생하지 않은 일이니 아예 없었을 것이라고 전제하는 논법이다. 사회 비판이랍시고 이런 엉터리 논리로 학생들을 선동한다.

사이비들의 고약한 논변은 천안함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법관 후보라는 사람조차 내가 직접 보지 않았으니 천안함 폭침이 북한의 도발이라는 조사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천연덕스런 말장난을 쳤다. 좌파들이 이런 레토릭을 구사하는 것은 과학사회학계-사회라는 말이 붙으면 대부분 엉터리가 많다-의 오랜 상대주의적 논변에 물들었기 때문이다.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을 비롯한 일군의 강단 좌파는 과학의 미신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왔고 지금 한국에서 충실한 제자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그것은 세계 노동계가 지금 한국에서만 강력한 전투 부대를 유지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형세다. 주자학도 그렇고 기독교도 그렇고 무엇이든 한국에만 왔다 하면 강성으로 돌변하는 것은 연구 과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과학적 진실이라고 해봤자 '과학자들 간의 합의일 뿐이며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골자로 한다. 바로 이런 사고가 천안함 조사결과는 반북(反北) 정부가 만들어낸 날조라는 주장으로 일거에 비약한다. 그래서 이들에겐 처음부터 천안함 조사보고서 따위는 진지하게 읽어볼 생각조차 없는 것이다. 고도로 숙련된 과학자의 우주관과 원시인의 우주관이 다를 바 없다는 문학적 표현을 객관적 사실처럼 오해하는 저차원 상대주의에 함몰되어 있는 것이 강단 좌파다.

지적 사기(詐欺)의 전통이라고 불러야 마땅하지만 그 어떤 과학적 증거도 주장하기 나름이라는 식의 오기와 뻔뻔스러움만이 이들의 무기다. 들뢰즈 라캉 리요타르 부르디외 등 소위 '유럽문학가'들이 그들의 위대한 스승이다. 무더위가 주관적이라는 점을 방패삼아 그것에 대한 문명적 관리는 필요 없다는 식으로 나아가는 허위의식이며 백치들이다. 그러면서 정작 에어컨은 더 많이 틀어댄다.

정규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