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기상이변은 인류사의 물줄기를 바꾼 주요 원인이었다. 당장 경제적으로 충격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삶을 지탱하는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현생 인류의 등장,고대문명의 멸망,왕조의 정권 교체,체제 변혁 등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의 배후에는 자연환경 변화가 도사리고 있었다.

고인류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이 현생 인류(호모사피엔스)와의 경쟁에서 패배해 도태된 이유 중 하나로 빙하기의 충격을 꼽는다. 크리스 스트링거 영국 런던자연사박물관 연구위원은 "빙하기가 닥치면서 자원을 놓고 경쟁하게 됐는데 지능이 더 높은 현생 인류에게 네안데르탈인이 밀려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대로 빙하기 환경에 '지나치게' 적응했던 네안데르탈인이 빙하기가 끝나자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사라졌다는 주장도 있다.

남미 안데스 산맥 해안지대에서 문명을 꽃피웠던 고대 모체문명이 멸망한 것은 엘니뇨에 의한 자연재해 때문이란 설이 유력하다. 모체문명이 절정을 이뤘던 550~600년께 이들이 살던 해안지대에 30년 동안 '메가 엘니뇨'로 알려진 폭풍우와 홍수가 발생하면서 문명이 파괴됐다는 설명이다.

중앙아시아 유목민족의 팽창과 쇠퇴도 기후변화의 결과란 분석이 있다. 조지프 플레처 하버드대 교수는 "기후변화로 중앙아시아 초원지대가 확장과 감축을 맥박처럼 반복하면서 그때마다 유목민의 운명이 갈렸다"고 설명했다. 흉노족,몽골족의 번성과 위축은 유목사회를 둘러싼 기후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설명이다.

또 17세기 글로벌 기후가 급격히 떨어진 '소빙기(小氷期)'를 맞이해 인류가 살아갈 환경 조건이 악화되면서 각 나라에 대변화가 일어났다는 '17세기 위기론'은 글로벌 역사학계의 주요 화두 중 하나다. 이 시기에 유럽에선 30년전쟁과 청교도혁명,러시아 대기근 및 로마노프 왕조의 등장 같은 정치적 혼란이 빚어지고 중국에선 명나라와 청나라가 교체됐다. 이와 함께 1707년 이탈리아 베수비오화산과 그리스 산토리니섬,일본 후지산,인도양 레위니옹섬 등 네 개 화산 폭발에서 발생한 재로 인해 그 다음해 닥친 혹한은 루이14세 시대 절대왕정의 기반을 흔들어댔다. 이 같은 상황에서 1789~1793년의 대엘니뇨로 유럽 전역이 흉작에 시달리면서 프랑스혁명이 발발했다는 시각도 있다. 이 밖에 1845년 아일랜드를 덮친 한파로 발생한 '감자 대기근'은 200만명 이상의 아일랜드인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는 계기가 됐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