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모 검사는 부부싸움하기가 무섭다. 같은 검사인 아내가 싸울 때마다 '업계 용어'를 써가며 꼬치꼬치 '신문'하기 때문이다. "어젯밤 11시반에 지검 청사에 있었다는 증거를 대보세요" "카드 영수증 내역 줘보세요"라는 식이다. 자칫 '딴 짓'을 했다간 며칠 내 걸리기 십상이라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 하는 '법조인 부부'. 여느 직장인과는 다르게 합리적이고 우아한 생활을 꾸려갈 것 같지만 이들에게도 남모를 '애환'이 있다.

◆피의자 다루듯 하는 검사 아내 무서워요

재경지검에 근무하는 최모 검사는 최근 변호사 남편에게서 "왜 피의자 다루듯이 하냐"는 항의를 받고는 깜짝 놀랐다. 집에 있을 때 자기도 모르게 '직업병'이 튀어나오더라는 것."저번에 얘기할 때는 그게 아니었는데…"라며 계속 추궁하는 것도 남편이 싫어하는 대목이다. 남편이 질려서 "그래 내가 잘못했다"고 하면 "허위자백은 용납 못해요. 진심에서 우러나올 때까지 처음부터 다시 얘기하세요"라고 다그칠 때도 있다.

박모 검사(여)의 큰 아이는 걸핏하면 엄마에게 "각서를 쓰세요"라고 한다. 자전거를 사주기로 해놓고 펑크를 내는 등 약속불이행이 반복되자 엄마의 말투를 흉내내더라는 것.박 검사는 음주와 늦은 귀가를 되풀이하는 검사 남편에게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각서를 쓰세요"라고 몇 차례 요구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남편도 검사인 김모 검사는 후배검사들에게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는 판사와 결혼하라"고 조언한다. 서로 여유가 없다보니 스트레스가 곱배기로 쌓인다는 것.농담인지 몰라도 남편도 "다시 태어난다면 여자검사와는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단다. 두 사람은 부지불식 간에 상대방을 자극하는 말투가 나올까봐 부부간 대화도 세 마디 이상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이해심 많은 법조인 커플 최고죠"

신영수(45),신영재 변호사(여 · 44)는 같은 로펌(법무법인 화우)에서 14년을 함께 일한 부부 변호사다. 전공도 기업 인수 · 합병(M&A)으로 같고,방도 같은 층을 쓰고 있다. 신혼이었던 연수원 2년차 시절 아내 신 변호사가 화우 문을 두드렸을 때 화우 측에서 "남편도 함께 지원해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해왔다.

그 이후 둘은 어소시에이트 변호사에서 파트너 변호사가 되기까지 여정을 함께했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싫을 법도 하지만 신 변호사는 "장점이 더 많다"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변호사로서의 경험과 노하우를 부부가 긴밀하게 공유할 수 있어 효율이 두 배이고,인맥도 나눌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집에서도 수시로 업무 이야기를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신 변호사는 "같은 분야에 있어 100%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는 배우자라는 게 법조인 커플의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3~4년 주말 부부는 피할 수 없어"

법조인 커플 중 주말부부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판사와 검사 모두 필수적으로 지방근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법원은 '4+3 시스템'(수도권에서 4년 근무 후 지방에서 3년 근무)을,검찰은 '연속 3회 동일지역 근무지 제한 시스템'을 지키고 있다.

결혼 10년 차인 한 판사는 "초임 때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배정됐는데 검사인 부인은 대구로 발령 받아 신혼 3년 간 주말에만 부인을 만날 수 있었다"고 당시의 아쉬움을 설명했다.

판사 커플의 경우 첫 근무지가 엇갈리면 길게는 7년도 떨어져 있을 수 있다는 계산도 나온다. 하지만 7년씩이나 떨어져 있기는 힘든 일이다. 첫 근무지야 어쩔 수 없다지만 그 다음 근무지 땐 보통 수도권에서 근무할 순서가 온 사람이 '울며 겨자먹기'로 지방으로 내려가는 일이 많다고 한다.

◆남편이 로펌 옮기니 "아내도 그만둬라"

변호사들은 '프로페셔널'로 불리고,그렇게 불리기를 좋아하지만 어쩔 수 없는 '로펌 소속 직장인'이기도 하다. 부부가 같은 직장에 다니면 일어나는 흔한 일들이 이들에게도 발생한다. 지난해까지 대형 G로펌 소속 변호사로 있던 한 부부는 '황당한' 기억을 아직도 지울 수 없다. 남편 A씨가 다른 경쟁 로펌으로 자리를 옮기자 부인까지 '나가라'는 통보를 받은 것.남편이 국내 최대 K로펌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둘은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스카우트 얘기를 듣자마자 G로펌 측은 "상도의에 어긋난다"며 노발대발하며 "A가 나간다면 아내도 함께 나가라"고 역정을 냈다.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것이 다 알려진 상황에서 자리를 옮길 수도,안 옮길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에 처한 A 변호사는 K로펌에 부인도 받아줄 것을 요구했고,결국 아내와 함께 옮겼다.

한 변호사는 "로펌들끼리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인력 싸움에 예민하게 반응 한 것"이라며 "로펌도 어찌보면 '기업'이기 때문에 '정당한 해고 사유' 없이 퇴직을 요구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심성미/임도원/이고운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