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항력인가,아니면 경보시스템의 문제인가. '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에 이어 최근 글로벌 재정위기로 금융시장이 또다시 출렁이면서 조기 경보 시스템(EWS · Early Warning System)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놓고 정부 안팎에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유난히 대외 악재에 취약한 우리나라 금융시장을 감안할 때 사전에 징후를 포착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 신용등급 강등 직전 외국인 투매

지난달 31일 미국의 부채 한도 조정협상이 타결된 직후 이달 1일 반짝 급등했던 주가는 다음날인 2일부터 폭락하기 시작했다. 외국인 투매가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불과 4일 만에 코스피지수는 2172.31에서 1943.75로 8.36% 빠졌다. 원 · 달러 환율도 17원이나 폭등했다.

기획재정부나 금융당국 내부에서도 "뭔가 이상한데…"라는 불안감은 있었지만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초대형 악재가 터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미국의 '국가부채 리스크'나 '더블딥(경기회복 후 재침체)' 우려가 제기되긴 했지만 '설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시장에 미국 재정위기 리스크가 이미 반영돼 있다는 판단이 우세했다.

◆S&P 발표 이틀 전 G20에 공조 제안

정부가 전혀 낌새를 못 챈 것은 아니었다. 최종구 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이 주요 20개국(G20) 의장국인 프랑스 재무차관에게 전화를 걸어 국제 공조를 제안한 시점이 S&P의 발표가 있기 이틀 전인 4일이었다.

재정부는 이날 코스피지수가 사흘 연속 급락하면서 154포인트 빠지자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다. 3일간의 낙폭 규모로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10월23일부터 사흘 동안 188포인트 하락한 이후 가장 컸다. 최 차관보는 "외국인이 신흥국 증시에서 등을 돌리고 있고,그 첫 신호탄이 오늘 한국 증시에서 나타났다"며 "상황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국제적인 공조를 시장에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프랑스 측에 전했다고 재정부 측은 말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지난달 EU 정상회의에서 그리스 채권을 보증하기로 의견을 모으는 등 합의책을 마련해 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미국 신용등급 강등 이후 태도를 바꿔 회원국과의 합의를 거쳐 공동성명을 서둘러 발표했지만 이미 타이밍을 놓친 뒤였다.

◆위기 사전 포착은 불가능

재정부는 국제금융센터를 통해 24시간 글로벌 금융시장을 모니터링하면서 대외 악재가 국내 시장에 미칠 영향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과 같은 대형 악재를 '타이밍'까지 맞춰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각각의 상황에 맞는 비상계획은 갖고 있지만 악재가 터질 시점까지 찍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시장 변화에 맞춰 적기에 대응 방안을 내놓고 상황별 비상계획을 수립하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금융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설명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도 "정부가 시장이 투매 심리에 빠질 것이라는 것을 앞서 예상하고 공매도 금지조치를 내리는 것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심기/박신영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