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을 전후해 개인용 컴퓨터(PC)가 한창 보급될 때 'VDT(Visual Display Terminal) 증후군'의 폐해가 사회적인 문제로 부상했다. 노트북과 넷북을 거쳐 스마트폰,태블릿PC를 사용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요즘엔 '제2의 VDT 증후군' 또는 'E피로 증후군'으로 불리는 건강상의 위험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요즘 10~30대는 태블릿PC나 넷북만 갖고 있으면 한두 시간쯤 보내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취업준비생 이현미 씨(23 · 여)는 친구들과의 약속시간에 앞서 미리 커피숍에 나가 태블릿PC로 1시간30분가량 검색했다. 그러다 보면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고 수다떨기를 3시간,저녁이 돼서야 친구들과 헤어져 버스에 올라 타니 저절로 입에서 '끙'소리가 난다. 허리에서 열이 나고 쑤시는 데다 목까지 저릿저릿했다.

이처럼 태블릿PC 스마트폰 등 신세대 정보기술(IT) 기기의 장시간 사용은 목과 어깨 손목에 기존 IT 기기보다 더 많은 부담을 준다. 우선 태블릿PC는 일반 컴퓨터보다 더 고개를 수그려야 한다. 커피숍에서 태블릿PC를 장시간 다루다 갑자기 고개를 들면 목이 뻐근해지면서 어깨에 통증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사람의 목은 본래 C자 커브를 이루는데 목을 길게 빼고 앞으로 구부리면 거북목(또는 일자목)이 된다. 이럴 경우 목의 변형과 통증,나아가 목디스크(경추간판탈출증)까지 초래할 수 있다. 목이 한 일(一)자로 변형되면 걷거나 뛸 때 생기는 충격이 목 전체로 고루 분산되지 않아 목뼈 사이의 디스크에 쏠리고,목 근육의 유연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커피숍의 책상과 의자는 공부하는 책걸상에 비해 낮아 고개를 더 깊게 숙여야 한다.

머리가 앞으로 떨궈지면 이를 지탱하는 어깨근육도 긴장한다. 머리가 앞으로 1인치(2.54㎝) 나올 때 어깨에 미치는 부하는 20㎏가량 증가하므로 어깨에 통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커피숍이나 사무실 등 에어컨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가동 중인 곳에서는 찬 공기에 척추와 어깨 주변의 인대와 근육이 더욱 긴장하게 된다. 편한 자세를 찾아 다리를 꼬고 앉는 습관은 요통을 더 심하게 만들 수 있다. 더욱이 장시간 담배까지 피우면 혈액순환이 잘 안돼 피로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손목과 손가락도 신형 IT 기기에 혹사당하고 있다. 태블릿PC의 경우 한 손으로는 신형 IT 기기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스크린을 터치한다. 태블릿PC의 무게가 700g 안팎에 불과하지만 장시간 한 손으로 들고 있으면 손목에 무리가 갈 수 있다. 또 스크린 터치는 키보드를 치는 동작보다 손가락에 힘이 더 많이 들어간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문자를 과도하게 보내는 것도 손목을 옥죈다. 스마트폰의 자판은 자간 경계가 좁다. 오타를 줄이면서 빠르게 치려면 손가락을 세워서 손끝으로만 터치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이때 손가락과 손목 관절에 미치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손목의 가운데를 관통하는 정중신경은 얇은 외피로 된 관(손목터널)에 둘러싸여 있는데 빠르고 잦은 손목 사용은 손목터널을 두텁게 해 정중신경을 압박,손가락이 저리고 둔감해지는 통증을 유발하게 된다. 미국에서는 잦은 문자메시지 사용으로 인한 손가락 및 손목의 통증을 '블랙베리 증후군'이라고 명명하며 심각성을 경고하고 있다.

최근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한 손으로는 태블릿PC를 들고 같은 쪽 어깨에 요즘 유행하는 큰 가방(빅백 또는 잇백)까지 메면서 어깨를 혹사시키는 사람이 많다. 장시간 이런 동작을 취하면 어깨근육이 긴장돼 근육과 근막이 딱딱하게 뭉쳐져 통증 유발점을 형성하는 '근막통증 증후군'을 초래할 수 있다. 만약 목이 뻐근하다고 목을 옆으로 세게 회전하면서 두둑 소리를 내는 습관을 갖게 되면 목 관절이 어긋나거나 목뼈가 웃자라 신경을 압박할 수도 있다.

이와 함께 눈의 피로와 두통도 간과할 수 없는 E피로 증후군이다. 장시간 컴퓨터 사용으로 직장인들은 오후 4시께 가장 눈이 피로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E피로 증후군은 심리적인 면에도 큰 영향을 미쳐 조급함 불면증 우울감 등 스트레스 증상을 유발한다. IT 기기 사용 시간을 줄이고 자주 휴식을 갖고 틈틈이 스트레칭하며 좋은 자세를 유지하는 게 증후군을 탈피하는 기초적인 예방법이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

도움말=고도일 고도일병원장,최봉춘 세연통증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