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ㆍ중ㆍ일 경제통합 추진하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 신용등급을 AA+로 강등한 다음날 뉴욕의 한 한인식당에서 현지 금융권 일을 하고 있는 친척 둘과 저녁을 같이 했다. 이번 사태에 대한 나의 질문에 생뚱 맞게도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사실 한국 등 다른 나라가 미국의 재정적자를 몰랐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달러를 찍어내는 미국의 발권력이 훼손된 것도 아닌데 시장의 반응이 너무 과한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금융시장이란 게 본래 의외성과 급변성이 있어야 버는 사람도,잃는 사람도 있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두 사람에게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너희들의 삶에 나타난 큰 차이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들은 사태 이전에는 수입의 120%를 소비했는데,지금은 80%만 소비하고 20%는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저축한다고 답했다. 자기 소득 안에서 지출한다는,너무나 당연한 이치의 답변이었다. 국가도 기업도 개인도 그래야 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동안의 세계 경제가 마치 마약에 취한 것처럼 무한한 성장의 환각에 취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게 된 주요인은 미증유의 엄청난 생산력을 가지고 가장 값싼 가격에 상품을 대량 공급할 수 있는 중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1970년대 이후 중국붐 이전인 2004년까지 주요 선진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고작 1~2%이며 3%가 넘어서면 호황이라고 불렸다. 2010년의 경제성장은 2009년의 경제성장이 마이너스 성장이어서 기저효과 때문에 높았던 것이고,올해는 정상화된 작년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성장률이 낮게 나오지만 이것도 정상에 가까운 것이다. 이런 저성장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계속될 것이며 이를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세계적인 소비위축은 필연적이다. 선진국 국민들은 더욱 더 근검절약해질 것이며 국가도 더욱 재정지출을 줄여갈 수밖에 없다. 미국식의 강력한 소비가 만들어내는 경제성장에 그동안 탐닉해 왔지만 앞으로는 건실한 재정운영에 힘쓸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한한 자원을 지금처럼 과소비에 의한 경제성장으로 낭비하는 것은 후손들을 위해서도 지양해야 한다. 이런 세계적 소비위축에 가장 타격을 받을 국가는 수출위주의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한국과 중국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수출의존도는 85%로 중국의 45%보다도 높다. 우리는 아직도 경제성장을 꾸준히 추구해야 하고 중국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새로운 수요를 어디서 찾아야 하나.

한 · 중 · 일 3국은 세계경제규모의 22%를 차지하고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지역이다. 지리적으로 근접해있고 문화적으로 많은 근사점을 공유한다. 한 · 중 · 일 3국의 총교역액은 5조3000억달러가 넘으며 모두 수출주도형 경제발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산업발전 단계에 차이가 있다. 일본은 성숙된 선진국이며 한국은 상위권 개도국,그리고 중국은 역동적인 개도국이다. 따라서 3국은 분업적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산업단계의 차별화는 3국의 협조와 조화가 이뤄질 때 대외적으로 다변화된 상품의 종류와 질로 엄청난 대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엔 상호 경쟁 심화와 중복 과잉투자를 촉발시켜 오히려 경쟁력을 저하시키게 된다.

3국간 신속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통해 시장을 내수 시장화해야 한다. 한국의 5000만 인구에 2만달러 소득과 중국의 인구 13억명 중 국민소득 1만달러 이상을 10%로 볼 때 창출해낼 수 있는 시장수요,거기에 일본 인구 1억3000만명을 소득 4만달러로 보았을 때의 소비여력은 세계 최고 수준의 내수시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일본에 대해서도 침체해가는 선진국시장을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시장이 될 수 있다. 한 · 중 · 일 FTA 체결에 이어 궁극적으로는 경제통합을 목표로 나아가야 한다.

전준수 < 서강대 경영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