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광복절이 되면 한국과 일본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에는 묘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양국의 대표적인 커뮤니티 사이트인 한국의 디씨인사이드(디씨)와 일본의 2채널(니챤) 사용자들 일부가 상대방 사이트를 마비시키기 위해 공격을 가하기 때문.이들은 상대방 사이트로 몰려가 끊임없이 '새로고침'을 하는 방법 등으로 트래픽을 늘려 상대방 사이트를 다운시킨다. 다행히 올해는 별다른 충돌없이 15일을 넘겼지만 매년 긴장감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물밑에선 더 치열한 전투가 일어나고 있다. 양국의 해커 고수들 역시 매년 8월15일이면 상대방 국가의 정부,기업 등 사이트를 침투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 해커들이 한국의 주요 사이트를 공격하면 국내 해커들이 막아내는 식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공격을 받았다. 세계 최대 해킹 대회인 데프콘(DEFCON)에서 우승한 경력도 갖고 있는 해커 그룹 CDC와 올해 결성돼 소니와 미국 중앙정보국(CIA) 등을 공격한 것으로 알려진 룰즈섹(Lulzsec) 멤버 일부도 '용병'으로 가세했다고 한다. 이들을 포함해 50여명이 이번 공격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방어에 나선 국내 해커들의 숫자는 고작 5~6명이었다. 어림잡아 10 대 1로 싸운 셈이다. 이들은 14,15일 이틀에 걸쳐 밤낮없이 일본으로부터 들어오는 공격을 막아냈다. 일본 해커들은 우리 정부와 공공기관,각종 기업들이 데이터를 저장하는 인터넷데이터센터(IDC)를 공격해왔다. 해킹이 성공했다면 어떤 데이터가 유출됐는지 모를 일이다. 방어에 참가했던 한 해커는 "이 같은 해킹 시도는 10여년 전부터 계속돼왔다"며 "일본 해커들의 숫자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공격 강도도 높아지는 반면 우리 쪽 해커는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이버 공간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 정부와 대부분 기업들은 이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조차 못한다. 또 다른 해커 K씨는 "정부가 나서야 하는 일을 해커들이 대신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올 들어 대규모 해킹 사건이 잇따라 일어나자 최근 방송통신위원회는 사이버 공간을 영토 · 영해 · 영공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지켜야 할 '제4의 영토'로 규정한다고 발표했다. 국가 간 사이버 전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진정성을 갖고 사이버 공간 수호 대책을 내놓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승우 IT모바일부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