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극장가에서 대작 한국영화 중 흥행 왕좌는 '최종병기 활'이 차지했다. 제작비 90억원을 투입한 이 영화는 개봉 15일 만인 25일 현재 360만명을 동원했다. 100억원 이상을 투입한 3편의 대작 '퀵'(306만명) '고지전'(293만명) '7광구'(223만명)를 제쳤고 조만간 500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최종병기 활'은 조선 최고의 명궁 남이가 병자호란 때 청나라군에 끌려가는 여동생을 뒤쫓아가 구출하는 이야기를 박진감 넘치게 그려냈다. 트위터에는 "숨막힌다" "재미있다" "참신하다"는 감상평이 쏟아지고 있다. 연출자는 김한민 감독(42 · 사진)이다. '극락도 살인사건'(250만명) '휴대폰'(70만명)에 이어 세 번째 연출작에서 대박을 터뜨린 그를 서울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번 영화를 통해 흥행의 관건은 낯익으면서도 낯섦을 동시에 갖추는 것이란 점을 알게 됐습니다. 추격전이라는 장르는 낯익은 구조라 할 수 있지요. 단순해서 관객들이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활 액션은 새롭습니다. 병자호란이란 역사에 새롭게 접근했고,무인들이 절벽을 건너뛰고 호랑이가 싸움에 끼어드는 장면들도 신선하게 느끼도록 풀어냈죠."

그는 조상들의 수난사에서 불굴의 정신을 찾아내기 위한 '역사 3부작'을 구상했다. 어느 날 서울 용산에 있던 국궁 활터를 지나다가 문득 영감이 떠올랐다. 병자호란 때 끌려간 누군가를 되찾으려는 남자에게 활을 쥐어준다면 재미있겠다고.활은 전통이 단절되지 않는 아이콘 중 하나다.

"활을 곡사로 쏴 적장을 살해하고 누이를 구하는 장면에 매료된다고들 합니다. 곡사는 바람이 아니라 활 자체가 갖는 물리적 속성이죠.화살은 원래 바람의 저항을 보정하며 날아갑니다. 곡사 장면에서 빨래 쥐어짜듯 활 시위를 돌린 장면은 약간 과장해 표현했지만 원래 국궁의 특징이죠."

그는 1년간 국궁을 배우면서 시나리오를 썼다. 활 시위를 두 손가락으로 당기는 자세는 양궁 스타일이며 국궁은 엄지로 깍지를 낀 뒤 당긴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양궁은 계량화된 반면 국궁은 쏘는 사람의 수양과 훈련 정도에 따라 사거리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는 활에 대한 맛을 배우들에게도 전수했다. 남이 역을 맡은 박해일의 활 액션이 몸에 붙은 듯 매끄러운 것도 그 덕분이다.

"극중 조선 궁사가 쓰는 소형 애깃살은 속도감이 뛰어난 반면 청나라 장군 주신타가 사용하는 대형 화살촉인 육량시는 상대편을 박살낼 정도로 강한 위력을 발휘합니다. 모두 국궁에서 사용하던 것들이지만 이 영화를 통해 처음 보여줬지요. "

청나라 기마대가 마을을 급습해 주민들의 목에 올가미를 걸어 끌고가는 장면은 충격적이다.

"수치스런 역사여서 감췄던 거지요. 감추기만 하면 나쁜 역사가 반복되잖아요. 역사적 고증에 입각해 사실성을 높였습니다. "

그가 신경 쓴 또 다른 요소는 완급 조절이다. 추격 영화에는 속도감이 필수적이지만 빠르기만 하면 관객들이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고 봤다.

"남이와 주신타 간의 추격신은 속도감을 높였지만 누이동생과 매제 간의 이야기는 호흡을 돌리고 따라오라는 뜻이었지요. 관객의 몰입감을 높이고 서스펜스를 끌어올리기 위해 추격의 기본기를 편집 리듬에 섬세하게 반영했어요. "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