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가 15년 만에 중대 변화를 맞게 됐다. 삼성카드가 삼성에버랜드 지분 25.6%를 전량 매각하기로 방침을 정하면서 1990년대 후반에 만들어놓은 '카드→에버랜드→생명→전자→카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가 끊길 상황이기 때문이다.

카드의 에버랜드 지분 매각은 당장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변화를 주지는 않겠지만,삼성이 새로운 지배구조를 만드는 신호탄이 될 것이란 해석이 일반적이다. 장기적으로는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부진 호텔신라 · 에버랜드 사장,이서현 제일모직 · 제일기획 부사장 등에 대한 경영권 승계와 계열 분리의 촉매제가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카드,에버랜드 지분 매각 왜?

2008년 4월,이른바 '김용철 특검' 사태 이후 삼성은 10가지 쇄신방안을 내놨다. 그 중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그룹 순환출자 구조를 4~5년 내에 해소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번 지분 매각은 이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금융회사는 비금융회사 지분을 5% 이상 소유할 수 없다'는 금산법(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조항에 따라 삼성그룹은 지배구조를 손질할 수밖에 없다. 금산법 규정상 삼성그룹 금융계열사인 삼성카드는 에버랜드 지분 25.6% 가운데 5% 미만을 제외한 지분을 내년 4월까지 모두 처분해야 한다.

이미 시장에선 삼성이 언제,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을 매각하면서 순환출자 구조를 끊을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돼왔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이 연말께 에버랜드를 상장시킨 다음 내년 초 삼성카드가 에버랜드 보유 지분을 내다 파는 걸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로 예상해왔다. 비상장 주식인 에버랜드 지분에 대한 적정 가격을 산정하기가 어렵고 지분 매각향방 등에 대한 논란을 피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번 블록 딜을 계기로 당분간 삼성에버랜드의 상장 가능성은 낮아졌다. 기업 상장 요건에서 상장심사 청구일 이전 1년간은 최대주주를 변경하는 게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삼성 지배구조 어떻게 변할까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매각으로 당장 삼성그룹 지배구조에 큰 변화는 없다. 지배구조의 외형만 기존 순환출자 구조에서 '에버랜드→생명→전자→카드'라는 수직구조로 바뀌게 된다.

시장에선 이번 지분매각을 계기로 삼성그룹이 지주회사 전환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순환출자 구조가 끊어진 다음에도 주요 계열사에 대한 대주주 일가의 지배력에는 변함이 없다고는 하지만 순환출자 구조보다 지배력이 더 약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3세 경영권 승계를 앞두고 어떤 식으로든 지배구조를 손질해야 한다는 점도 지주사 전환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에버랜드를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방안이다. 에버랜드를 사업회사와 지주회사로 분리한 다음 지주회사 밑에 삼성전자,삼성물산 등을 자회사로 두고 삼성생명을 금융계열사를 총괄하는 중간금융지주사로 만드는 구조다. 삼성생명을 보험지주회사로 만들 것이란 예상도 있다. 보험지주회사가 비금융 계열사를 자회사로 둘 수 있도록 금융지주회사법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이 밖에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을 인적 분할한 뒤 두 회사를 합병해 비금융계열 중간 지주회사를 만드는 방법 등도 나온다. 문제는 어떤 경우에든 지주회사가 계열사 지분(상장사 기준)을 20% 이상 확보해야 한다는 조항 탓에 수십조원의 자금이 든다는 점에 있다.

◆계열분리 신호탄 분석도

이번 지분매각을 계열 분리와 맞물려 보는 시각도 있다. 순환출자 구조 해소를 계기로 이재용 · 이부진 · 이서현 등 3세들에 대한 지분 정리 작업이 본격화할 것이란 관측이다.

따라서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매각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계열분리 작업이 이뤄지지 않겠냐는 예상이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카드가 매각하는 에버랜드 지분을 나중에 이부진 사장이 사들여 에버랜드 최대주주로 올라서는 안이 나온다. 여기에다 이재용 사장이 갖고 있는 에버랜드 지분(25.1%)과 이부진 사장이 보유한 삼성SDS 지분(4.18%)을 맞교환하는 시나리오다. 이렇게 되면 이부진 사장은 에버랜드 최대주주에 올라 호텔신라,삼성물산 상사부문 등을 경영할 토대를 만들 수 있고 이재용 사장은 삼성SDS 경영권을 높일 수 있게 된다.

강유현 기자 y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