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안정을 책임지고 있는 한국은행이 금리 함정에 빠졌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서는 기준금리를 올려 돈줄을 조여야 하는데,그럴수록 해외에서 더 많은 돈이 들어와 시장금리가 거꾸로 떨어지고 있다. 미국의 제로(0)금리 정책과 유럽 재정위기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외국 자본이 국내로 대거 밀려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초저금리를 장기간 유지하려는 미국 유럽 일본의 통화정책이 한은을 무장해제시킨 꼴이다.
16일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3.40%에 거래를 마쳤다. 최근 이틀 사이에 0.09%포인트 오르긴 했지만 만기 1주일짜리 한은 기준금리(연 3.25%)와의 격차가 0.15%포인트에 불과하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한 차례만 올려도 금리가 뒤집어질 정도로 좁혀졌다. 국고채 5년물과 10년물,20년물도 일제히 연 3%대 중후반까지 떨어졌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올 들어 1,3,6월 세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올렸다. 연 2.50%였던 기준금리는 연 3.25%로 0.75%포인트 높아졌다. 반면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 2월 연 4.10%를 찍은 뒤 하락세다. '단기 금리인 기준금리 조정을 통해 장기 시장금리에 영향을 준다'는 통화정책의 기본 원칙이 무너진 셈이다.

한은의 기준금리와 국내 시장금리가 거꾸로 가는 것은 미국이 더블딥(짧은 경기회복 후 재침체) 우려로 초저금리 정책을 지속하고,그리스 디폴트(채무 불이행) 가능성 등 유럽발 금융위기가 계속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퍼지면서 한국 채권에 돈이 몰렸다.

외국인은 올 들어 국내 주식시장에서 6조3000억원어치를 팔아치웠지만 채권은 꾸준히 사들였다. 외국인 채권 보유 잔액은 작년 말 77조원에서 현재 86조원으로 9조원가량 늘었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 후에도 외국인 채권 매수 기조는 이어지고 있다.

문홍철 동부증권 애널리스트는 "미국 경기는 조기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고 유럽 재정위기는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장기 채권 금리가 지금보다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