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저축은행 사건은 퇴직 임원의 개인 비리이며,회사 및 대표자와는 관련이 없어 부산저축은행과는 다릅니다. 정상적인 저축은행이 쓰러지지 않도록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할 예정입니다. "

지난 5월 초 임원이 뇌물을 받고 대출해준 사실이 알려지면서 예금인출 사태가 벌어진 제일저축은행 서울 가락동 본점에 파견된 금융감독원 및 예금보험공사 직원들이 불안한 마음에 몰려든 예금자들에게 했던 말이다.

기자는 당시 이 말을 믿고 돌아갔던 제일저축은행 예금자 최모씨를 19일 가락본점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다. 이곳은 전날 영업정지 소식이 알려지면서 새벽부터 불안한 마음에 들른 예금자 수백명으로 종일 북새통을 이뤘다.

6개월 전 결혼을 앞둔 자녀의 주택구입자금으로 3500만원을 이 저축은행에 맡겨 놓았다는 최씨는 '불안한 마음에 예금을 모두 찾아가서 저축은행이 문을 닫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1인당 5000만원 이하의 예금은 정부에서 지급을 보장한다"며 "중도해지를 하면 이자손실이 많다"는 제일저축은행 직원의 말도 그를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4개월 만에 다시 이곳을 찾은 최씨는 "도대체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하냐"며 하소연했다. 그는 "4개월 만에 영업정지를 당할 정도로 이미 상황이 좋지 않았던 저축은행의 예금자들에게 경고는커녕 동요하지 말라고 한 금융당국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일저축은행은 지난 5월 금감원 공시를 통해 3월 말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7.41%라고 밝혔다. 금융당국이 요구하는 기준(5%)을 넘어선 수치였다. 금감원은 그러나 18일 제일저축은행에 영업정지 조치를 내리며 지난 6월 말 현재 자기자본비율이 -8.81%라고 밝혔다.

제일저축은행은 또 3월 말 총자산이 3조8325억원으로 부채(3조6197억원)보다 2100여억원 많은 것으로 공시했지만,경영진단 결과 7월 말 기준 순자산(자산-부채)은 -2070억원으로 드러났다. 금감원 관계자는 "숨겨져 있던 부실 대출들이 대거 드러나면서 자기자본비율이 급격히 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씨는 "자식 결혼이 얼마 남지 않아 내일 새벽 일찍 나와서 가지급금 번호표를 받아 하루라도 빨리 예금을 찾아야겠다"며 발길을 돌렸다.

김일규 경제부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