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는 놈은 똑똑한 놈을 못 따라가고, 똑똑한 놈은 즐기는 놈을 못 따라간다.'

골프 선수 박세리는 성적 부진에 빠졌을 때 아버지를 향해 "골프에 지쳐 잠시 빠져 나오고 싶은데, 골프 말고 다른 일상 생활을 즐기는 것은 왜 알려주지 않았냐"고 불평을 했다고 한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 비축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21세기 북스)의 저자 김정운 명지대 교수는 "박세리 선수의 한탄은 한국사회가 더 발전하지 못하는 '총체적 문제점'을 대변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21세기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성공하는데, 놀 줄 모르는 386세대가 우리사회를 망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자는 386세대를 '사회를 분노와 증오로 아는 세대'라고 풀이했다. 1980년대 초 군사독재 시절 대학을 다닌 이들은 '재미와 행복을 추구하면 죄의식을 느끼도록 의식화된 세대다. 그들이 사회 주류가 되어 제대로 놀 줄 모르는 문화를 선동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 많은 30,40대의 대표적인 놀이 문화는 폭탄주와 룸싸롱, 노래방 등 밤문화가 대부분이다. 놀이의 주체자들도 스스로 '천박한 여가 문화'라고 느낀다.

김 교수는 "어두침침한 곳에 숨어서 죄의식을 느끼며 즐기는 것이 아니라, 사소하지만 누구나 다양한 재미를 추구할 수 있는 사회가 진짜 경쟁력 있는 사회"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일만 하느라 사는 재미를 배우지 못한 사람이 많은 한국 사회는 주 5일 근무제가 확대 될수록 여가문화의 획기적 변화가 있기는 커녕 '투잡스' '쓰리잡스' 현상과 같은 여가소외 현상이 심각해질 것" 이라며 "이 문제는 이혼률 증가, 청소년 문제, 고령화 사회로 인한 각종 부작용을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21세기에는 '창의력'이 뛰어난 인재가 요구된다.

김 교수는 "생존을 위해 죽도록 일만 하느라 사는 재미를 배우지 못한 사람은 제대로 노는 사람보다 창의력이 떨어지고, 이런 사람이 많이 사는 도시는 결국 에너지가 고갈돼 창의력이 마비되는 현상이 온다"고 경고했다.

“독도가 자신들의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 우익은 하나도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정말 무서운 일본인은 욘사마를 쫓아다니는 일본 아줌마들이다. 생각해보자. 우리의 아내들이 일본의 한 영화배우에 미쳐 일본으로 날아가 며칠씩 흥분해서 몰려다니면 이를 참고 바라볼 수 있는 한국 남편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일본에서는 이 한심한 재미마저 인정된다. 남편들도 인정하고 일본 사회도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인정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우리의 문화 상품이 팔린다고 철없이 좋아할 일이 전혀 아니다. 솔직히 나는 두렵다. 욘사마에 미쳐 돌아가는 일본의 아줌마들의 한류 열풍이 인정되는 일본의 문화적 잠재력이 어떠한 방식으로 우리를 다시 점령할 지.” -본문 중에서


김 교수는는 사소한 재미 안에 경쟁력이 숨어 있다고 주장한다. 소소한 일상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는 사람에게는 매일의 삶이 ‘축제’다. 진부한 것을 새로운 맥락에서 ‘낯설게’ 보는 능력, 그것이 바로 창의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러면 가끔은 멍하게 보낸다든지, 일상에서 사소한 재미를 찾아 놀 수 있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성공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야 성공한다" 며 "참고 인내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늘 재미있고 행복한 사람이 창의성있는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창의적 인재를 많이 길러낸 유태인의 노동 철학은 ‘열심히 일해라‘가 아니라 ‘우선 잘 쉬어라’다.

일주일에 하루는 꼭 쉬어야 하는 안식일, 6년을 일하고 1년을 쉬는 안식년, 7년씩 7회 일한 후 50년째는 법과 제도는 물론 자연까지 쉬어야 하는 ‘희년’ 등의 휴식의 철학은 세계 어느 곳에 흩어져 살든 유태인의 삶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우리가 눈여겨볼 대목이다.

김 교수는 "일 중독자는 자신이 일주일에 70시간 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일 잘하는 사람은 일주일에 40시간 밖에 일하지 않는다" 며 "일중독자가 실제 일하는 시간은 30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40시간은 일하기는 커녕 일에 대해 걱정하면서 보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창의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지식기반사회에서 근면과 성실은 더 이상 최고의 도덕적 덕목이 아니다" 며 "재미와 행복이 동반되는 창의적 여가문화가 개인은 물론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 된다. 여가문화는 문화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20세기에는 ‘뛰는 놈’위에 ‘나는 놈’이 있었다면 21세기에는 ‘나는 놈’ 위에 ‘노는 놈’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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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운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13년 동안 학위 따기 어렵다는 독일의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문화심리학을 공부하고 독일학생들을 가르치던 사람이 귀국해서는 5000만 국민에게 ‘놀자’고 소리 높여 외치고 다닌다.

그것도 ‘여가학’이란 생소한 학문을 내세우며 노는 것에 대해 공부하고 연습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그런데 이 희한한 주장에 대한민국이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대학과 기업과 정부와 방송에서 노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인지라, 정작 자신은 제대로 놀 시간이 없는 황당한 지경에 빠져 있다.

2009년 쓴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가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모으자 2005년 발간한 저서 '노는 만큼 성공한다'가 재조명 돼 최근 개정판이 출간됐다.


한경닷컴 정원진 기자 aile0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