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불면서 쌀쌀해졌다. 짧은 환절기가 지나면 본격적인 독감(인플루엔자) 유행철이 다가온다. 국내에서는 이미 이달 초 독감바이러스(A형 H3N2)가 확인됐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인플루엔자 예방을 위한 표본감시 첫 주로 정한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3일 사이 국내에서 계절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일찌감치 발견될 것이다. 이에 따라 의료계는 올해도 독감이 유행할 가능성이 높다며 반드시 독감백신을 접종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이달 초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처음 분리된 것은 독감 유행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65세 이상 노인과 만성질환자, 영·유아 등 고위험군은 인플루엔자 유행 전에 미리 접종을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백신 접종 10월이 적기

이번에 검출된 바이러스는 모두 인플루엔자 A형 H3N2 계절형 바이러스로, 2009년 유행했던 신종플루(H1N1 바이러스)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번 바이러스는 일종의 변종이다. 그러나 지난해보다 빨리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발견됐다는 점에서 독감 확산에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물론 2년 전 지구촌을 공포로 뒤덮었던 신종플루의 ‘트라우마’에 지나치게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류성열 계명대 동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2009년 유행했던 신종플루 H1N1 바이러스는 완전히 대유행이 수그러들면서 지난해 말부터 계절인플루엔자의 하나로 간주되며 더 이상 ‘신종플루’로 불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류 교수는 “일반 계절독감에 준해 항바이러스제 치료를 하고 독감백신에 바이러스가 포함돼 있어 통상적인 독감 백신접종으로 충분히 예방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통상적으로 환절기 독감은 감기와 다르다. 독감 또는 급성 호흡기 감염으로 불리는 인플루엔자는 기침이나 콧물 같은 일반적인 감기보다 증상이 갑작스럽게 시작되고 고열과 오한·두통·몸살·전신 근육통 등이 나타난다. 어린이의 경우 설사와 복통을 동반해 설사병으로 오인하기도 한다. 예방접종 효과는 거의 접종 2~3주 뒤에 나타나는 만큼 독감이 유행하기 전에 미리 맞는 것이 좋다. 전문가들이 권하는 최적기는 10월이다.

독감이 위험한 이유는 합병증 때문이다. 가장 흔하면서도 위험한 합병증은 폐렴. 이달 들어 수도권 지역 동네병원에서 크게 번지고 있는 것이 바로 폐렴이다. 병의원마다 하루 10명 안팎의 환자가 발생하고 있고 십중팔구는 10세 전후의 어린이다. 폐렴의 주요 원인은 폐렴구균이다. 보통 사람의 30~70%가 코와 목에 갖고 있는 흔한 세균으로 건강할 땐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독감으로 면역력이 떨어지면 폐렴구균은 그 틈을 타고 신체 여러 부위로 침투해 폐렴이나 중이염, 수막염 같은 여러 병을 일으킨다. 요즘은 영유아에게 폐렴과 중이염이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 면역체계가 덜 발달한 소아나 이미 노화로 폐 기능이 약해진 노인은 한번 폐렴구균 질환이 나타나면 중증으로 진행되기 일쑤다. 그래서 독감과 폐렴구균백신을 함께 맞는 것이 효과적이다. 유럽에선 두 백신을 함께 접종할 경우 입원율은 63%, 사망률은 81% 감소한다는 보고가 있었다.

배근량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관리과장은 “예방접종을 제때 맞으면 국내외에서 유행하는 수두·홍역·인플루엔자와 같은 감염병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면서 “특히 독감백신은 매년 새롭게 제조되는 백신이므로 지난해 접종했다고 해서 올해 건너뛰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성인도 예방접종은 필수

예방접종은 흔히 신생아나 소아만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영유아 예방접종이 국가 표준 접종으로 자리잡은 이후 백신으로 예방 가능한 감염질환을 막아 소아 사망과 합병증 발생률이 급격히 감소해왔다. 반면 성인은 어렸을 때 맞은 예방접종의 면역력이 약해져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는 감염질환이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 실제 미국에서는 예방 가능한 질환으로 사망하는 환자 수가 소아의 경우 연간 500명인 데 반해 성인은 5만~7만명에 이른다.

영유아 또는 어린이에게만 필수적으로 시행돼왔던 예방접종이 어른에게도 건강 관리와 예방에 중요한 부분이라는 얘기다. 성인 예방접종은 어렸을 때 맞은 예방접종의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감염질환이 유행할 우려가 높아 반드시 챙겨야 한다. 항체의 저항력이 떨어지거나 소아 때는 증상 없이 넘어간 탓에 항체가 있는지 여부를 모른다면 성인이라고 해도 질환 감염에 제대로 방어할 수 없다. 질환 유행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2000년 20, 30대 성인들 사이에서 홍역이 크게 유행했던 경우나 2008년 이후 젊은이들 사이에서 A형 간염의 발생률이 급격히 늘고 있는 사례 등은 성인 예방접종의 필요성을 잘 보여준다. 인플루엔자· 폐렴·파상풍· 디프테리아가 성인 기본 예방접종에 해당한다. 40세 이상 성인이면 대부분 접종하는 것이 좋고, 특히 천식을 포함한 만성 호흡기 질환자, 만성 심혈관 질환자, 당뇨병 환자, 항암제 등에 의한 면역 저하자, 만성 간 질환자 등은 접종이 필수적이다. 보다 상세한 성인 예방접종 정보는 대한감염학회(www.ksid.or.kr)를 참고하면 된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

도움말=송재훈 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교수, 선우성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