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은 올 들어 지난달까지 주식 직접투자에서 9.56%의 손실을 봤다. 국민연금의 주식 직접투자 규모가 30조원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3조원에 가까운 손실을 입은 셈이다. 이달 주가 하락폭을 감안하면 손실폭은 더 커졌을 것으로 추산되지만 증시 하락에 대비한 안전판인 헤지 기능은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교직원공제회 등 주요 연기금도 비슷한 사정이다.

국민연금 등 각종 연기금의 증시 하락 리스크를 방어하는 주요 수단인 선물 투자는 운용 규정에 의해 제한되고 있다. 규정에서는 투기적 파생상품 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사학연금 관계자는 "정부에 헤지를 위한 선물 투자 가능 여부를 질의했더니,선물에서 수익이 조금이라도 나면 해당 포지션을 모두 청산해야 한다는 답변이 왔다"며 "헤지 기능 없이 수수료 부담만 지는 셈이라 선물을 통한 헤지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 차익거래를 통해 일부 투자를 헤지하던 국민연금도 2008년부터 비슷한 이유로 해당 거래를 중단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리먼브러더스 파산사태가 터지면서 국민연금의 파생상품 거래에 대한 비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가와 반대로 움직이는 인버스상장지수펀드(ETF)와 일정 정도까지는 증시 하락에 따른 손실이 없는 주가연계증권(ELS)을 통한 헤지도 쉽지 않다. 공무원연금공단 관계자는 "주식 운용 규모가 큰 만큼 헤지를 위해 연기금이 인버스ETF에 투자할 경우 시장을 교란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측은 "똑같이 주식에 투자하더라도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도 단점"라고 말했다.

일부 연기금은 헤지펀드 투자를 통해 리스크를 헤지하고 있다. 공무원연금은 최근 CTA(commodity trading advisory) 전략을 이용하는 헤지펀드에 투자해 직접투자에서 입은 손실을 만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CTA전략은 주식 채권 외환 등의 가격 하락이 지속될 때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추세에 베팅해 수익을 낸다. 교원공제회도 500억원을 헤지펀드에 투자하기로 했다.

한 주요 연기금 운용본부장은 "시장이 하락해도 손절매를 통해 주식 편입 비중을 낮추는 것 외에 뚜렷한 대응 수단이 없는 상황"이라며 "자산운용사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연기금의 특수성을 고려한 헤지 상품을 만들어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