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와 선진국 경기의 부진에 대한 우려가 장기화되면서 금융권의 태도가 변하고 있다. 향후 자금 조달이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돼 미리 대비하는 기업들이 늘어날 것 같다."

공인회계사 출신인 한 코스닥 상장사 대표이사가 최근 내놓은 진단이다. 실제로 최근 증자나 자산매각을 통해 자금확보를 추진하는 기업들이 잇따르고 있다.

2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3D 전문기업 레드로버는 한국증권금융과 신한캐피탈을 대상으로 각각 50억원, 20억원의 사모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을 결정했다. 이번 BW의 표면이자율과 만기이자율은 각 3.8%며 사채만기일은 2017년 9월 29일이다. 행사가격은 1만768원으로, 사채의 조기상환청구는 발행일로부터 2년 이후에 가능하다.

레드로버 관계자는 "세계 금융 상황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어 국내 우량 금융기관으로부터 안정적인 자금을 확보했다"며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미국 메이저 배급사와의 계약도 탄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레드로버는 현재 230억원이 투입되는 4D 애니메이션 '넛잡'의 총괄제작사로 미국 메이저 배급사와 전세계 배급 계약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자금 확보로 지속적인 글로벌 콘텐츠 제작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광학렌즈 제조 및 판매 업체인 삼양옵틱스도 운영자금 50억원 조달을 위해 신한캐피탈을 대상으로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키로 했다. 사채만기일은 2014년 9월 29일이며 표면이자율은 2.0%, 만기이자율은 3.95%이다. 행사기간은 내년 9월29일부터 2014년 8월29일까지이며 행사가액은 주당 1052원이다.

대기업들의 대규모 증자 계획도 잇따르고 있다.

한진해운은 4720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키로 했다. 유상증자를 통해서 발행하는 신주의 총수는 4000만주로 기존 발행주식 수의 47%에 해당하는 대규모다. 이번 증자를 통해 조달되는 자금은 시설자금과 운영자금으로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앞서 동양애경유화도 각각 595억원, 713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키로 했다. 평화홀딩스 계열의 자동차 부품업체 파브코도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109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주주배정방식으로 실시할 계획이다.

자산 매각도 잇따르고 있다.

한진해운은 한진에너지 지분을 처분해 1598억원을 확보하게 됐으며 이달 초에는 부산 감천터미널 부지를 1000억원에 매각하면서 유동성을 확보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단기간 내에 유상증자 자금을 포함해 7000억원 이상의 자금을 확보한 것이다.

엄경아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한진해운이 유상증자 뿐만 아니라 한진에너지 지분을 처분하거나 이번 달 초 터미널 부지 매각을 통한 자금확보는 모두 비수기와 본격적인 불황기 돌입에 앞서 준비를 하기 위한 선조치"라고 판단했다.

국영지앤엠은 자산매각을 통한 시설자금 확보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서울 강남구 논현동 소재의 본사 사옥을 111억원에 매각키로 했다. 솔로몬저축은행도 대치동과 역삼동 사옥을 1684억원에 처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효성ITX도 계열사인 갤럭시아커뮤니케이션즈 주식 200만주를 32억1000만원에 처분했다.

한편 10대 재벌그룹도 세계경제 위기에 대비해 자금확보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총수가 있는 자산순위 10대 그룹 소속 82개 계열사(12월 결산법인)의 국제회계기준(IFRS) 20011년 반기보고서상 자본잉여금과 이익잉여금을 합친 유보금은 348조원이었다. 이는 지난해 말 유보금 283조3000억원보다 64조7000억원이 늘어난 것으로 역대 최고 증가액이다.

한경닷컴 정형석 기자 chs879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