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쓰레기 회사에다 버리는 직원이나, 볼펜마다 '회사 자산' 딱지 붙이는 사장이나
"어 자기야? 끊어.내가 전화할께."

중소 무역업체에 다니는 한 대리는 여자친구에게서 휴대폰으로 전화가 올 때마다,이렇게 끊고서는 사무실 전화기로 여친에게 다시 건다. 사내에서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성 상무의 표정은 달갑지 않다. 업무 시간에 사적인 전화를 주고받는 모습도 거슬리지만,여친의 핸드폰비를 아껴 주려고 회사 전화를 이용하는 게 더 못마땅하다. 회사는 올해 적자가 우려돼 한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비상 경영 상황이다. 성 상무는 전화비까지 따지는 속 좁은 상사로 비쳐질까봐 "사적 통화는 나가서 해야 되지 않겠느냐"며 에둘러 표현한다.

'㈜△△의 자산입니다. '최근 정보기술(IT) 관련 마케팅 업체 △△사에 경력직으로 입사한 정 과장은 볼펜,스테이플러(호치키스) 등 각종 비품에 이런 문구가 붙어있는 것을 보고는 눈을 의심했다. 책상,의자 등에 재고 파악용 번호 등이 표기돼 있는 경우는 봤지만,문구류마다 '회사 물건'임을 알리는 견출지를 붙여 놓는 경우는 처음 봤다. 게다가 사장이 가끔 퇴근하는 직원을 무작위로 골라 불시에 소지품을 검사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더욱 황당했다. 사장은 보안 때문이라고 하지만 직원들은 회사 비품을 들고가는 사람을 잡아내려는 속셈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정 과장은 왠지 회사를 잘못 택한 것 같다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이처럼 탁월한 '주인의식'으로 회사 물건을 제 것처럼 생각하는 직원들이 있는가 하면,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구두쇠 정신'으로 직원들의 숨을 막히게 하는 경영진들도 있다. 요즘같이 경기가 불안하고 물가가 높은 시대에는 '쪼잔한' 회사와 '찌질한' 직원들 간의 숨바꼭질이 더욱 치열하게 전개된다.

◆커피믹스 왜 빨리 없어지나 했더니…

출판사에 다니는 노처녀 김 과장은 퇴근하다가 얼굴이 화끈거리는 경험을 했다. 엘리베이터를 놓치지 않으려고 뛰다가 가방을 바닥에 떨어뜨렸는데,가방 안에 있던 커피믹스와 티백 녹차 등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퇴근 전에 사무실에 비치돼 있던 커피믹스 등을 가방 속에 탈탈 털어넣는데,이를 동료 직원들에게 들킨 것이다. 무안한 김 과장은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집에서 야근할 때 마시려고 몇개 챙겼는데…좀 많았나"며 연신 땀을 닦았다.

한 게임업체 경영지원팀에는 각종 물품에 붙어 있는 캐시백 포인트 쿠폰을 뜯어가는 직원이 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누가 뜯어가는지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 제품을 쓰려고 보면 쿠폰이 있던 부분이 감쪽같이 사라져 있다. 가끔씩 저녁 때 직원들이 간식으로 피자를 배달시켜 먹을 때면 간식 시간이 끝나기 무섭게 피자 박스에 붙어있던 쿠폰도 조용히 사라진다. 특정 직원의 소행으로 짐작하지만,이를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괜히 공론화했다가 자신까지 쪼잔한 사람으로 취급받을까봐서다.

◆쓰레기와 함께 출근하는 직장인

단독주택에 사는 김 과장은 차를 타고 회사 지하 주차장에 들어서면 비닐 봉투를 한 짐 들고 내린다. 집안 쓰레기를 회사까지 들고 온 것이다. 회사 주차장 내 쓰레기통에는 규격 쓰레기 봉투를 쓰지 않아도 되고 분류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집에서 일반 비닐 봉투에 대충 쌓아놨다가 회사에서 처리하면 쓰레기 봉투값도 아낄 수 있고 편리하기도 하다. 음식물 쓰레기도 종종 회사에서 처리한다. 물론 우편물 등에 수신자 부분을 떼어낼 정도의 치밀함은 기본이다.

제과회사에 다니는 박 대리,그의 퇴근길 가방에는 항상 회사의 과자가 몇 봉지 들어있다. 직원이니 그 회사 제품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보니 공짜로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반대로 주말에는 그 과자가 당기는 날에도 절대 사지 않는다. 회사에 가면 공짜로 구할 수 있는데 돈을 주고 사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출입문에서 지각사원을 잡는 사장님

'뛰는 직원' 위에 '나는 회사'가 있다. 아직도 화장실에 두루말이 화장지 대신 신문지를 비치한 직장이 있다면? 볼일 보는 직원들이 신문지를 양손으로 비비고 있다면? 21세기 대한민국의 한 중소기업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사장이 비용을 절감하겠다며 화장실에서 휴지를 쓰지 못하게 하고 대신 폐 신문지를 갖다 놓게 한 것.당연히 사내에선 항의가 빗발쳤다. 참다못한 한 직원이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내 공중파에서 소개되기도 했지만 사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기업에 다니는 김모 대리의 전언."아예 휴지를 들고 다니거나 옆 건물 화장실을 이용하는 직원들도 꽤 있죠.사장의 속셈은 아예 회사에서 큰 볼일을 못 보게 해 물값까지 아끼겠다는 것입니다. "

한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에는 아침 8시30분이 되면 직원들이 회사 안으로 전력질주해 들어오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지각을 체크하기 위해 현관 앞을 사장이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지각한 직원들이 전날 몇 시에 퇴근했는지를 체크해 전날 야근했으면 넘어가고,그렇지 않으면 인사고과에 반영한다. 직원들은 "고등학교 등교길에 교문 앞을 지키고 서 있는 교장 선생님을 보는 심정"이라며 볼멘 소리를 한다.

◆출장은 무조건 평일에 출발해라

한 전자업체 직원들은 출장일이 대부분 정해져 있다. 유럽 지역으로 출장이 잦은 이 기업은 직원들이 현지에 도착하는 시간은 되도록 월요일에,현지에서 출발하는 시간은 금요일 오후로 맞춘다. 이렇게 되면 주말에 현지에 체류하지 않게 돼 출장비를 줄일 수 있다는 치밀한 계산의 결과다. 한 직원은 "터키 출장을 3일 만에 다녀온 적도 있다"며 "단기 출장이 잦은 직원들은 건강관리가 중요한데도 회사는 해외출장만 보내주면 직원들이 고마워하는 줄 안다"고 푸념했다.

◆구내식당에 밥만 들고 오는 사원

협력사 직원이나 전산회사 용역 직원 등 외부에서 파견나온 직원들도 '쪼잔함'의 전형을 보여준다. 한 백화점의 구내식당은 영양사나 조리사들이 직접 배식하지 않고 직원들이 직접 반찬을 담아가는 방식을 쓰고 있다. 우람한 체격의 협력사 직원 박모씨는 매번 어마어마한 양의 반찬을 가져간다. 반찬 리필도 자주한다. 알고보니 박씨와 그의 동료 직원들은 집에서 밥만 따로 싸오고,박씨가 담아간 반찬을 나눠먹는 것이었다. 이 백화점의 한 직원은 "영양사들이 몇 번 제지하긴 했지만 말을 듣지도 않고 오히려 그가 언성을 높이는 경우도 많다"며 "이제는 영양사들도 포기한 눈치"라고 전했다.

고경봉/강유현/윤성민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