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하버드大 경영학만 배워야 합니까"
"우리 경영학계가 언제까지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자료만 배워야 합니까. "

서울대에서 학부생을 상대로 현대 · 기아차 기업경영전략 특강을 3학기째 하고 있는 이동기 서울대 경영대 교수(54 · 사진).그는 24일 관악캠퍼스 연구실에서 기자와 만나 "우리 경영학계도 국내 기업들의 케이스 스터디를 심층 발굴해 한국식 경영의 독특하고도 새로운 경영전략을 연구하고 모델 케이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영향력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글로벌 기업들의 최신 경영 트렌드와 이론을 접목한 방대한 케이스 스터디 자료에서 나옵니다. 우리 경영학계는 이런 점에서 아직 크게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

이 교수는 "현대차 삼성전자는 미국 기업을 위협할 정도로 글로벌 시장의 입지가 강해졌지만 국내 경영학계는 아직 미국 경영학계의 우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부끄러운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국내 경영학계도 미국식 경영이 아닌 한국식 경영 모델에 대한 사례연구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대차의 경영전략에 관심을 갖고 강좌를 연 계기를 묻자 그는 '호기심'이라고 답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현대 · 기아차는 예상을 뛰어넘는 고속성장을 해왔습니다. 삼성그룹과 비교해보면 투박하고 엉성해보이는 조직구조,잦은 경영진 교체,농업적인 근면성 등이 특징이지요. 한마디로 '구식 스타일'입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위기를 견뎌내고 오히려 더 강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운(運)만으로 그렇게 계속될 수는 없습니다. 분명 숨은 비결이 있다고 봅니다. 그걸 찾아보려고 강좌를 개설한 것입니다. "

이 강좌에는 현대 · 기아차 임직원들이 강사로 참여했다. 품질 마케팅 연구 · 개발(R&D) 조직문화 글로벌전략 등에 대해 사례 중심으로 강의하고 학생들과 토론을 벌였다. 지금까지 연구 결과 '연구 · 개발,생산,마케팅 등 기능 중심의 조직구조'가 현대 · 기아차의 강점인 것으로 파악된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세계 10위권 밖에 머물렀던 현대 · 기아차가 지금은 '세계 자동차 메이커 빅5'에 진입해 GM 도요타 폭스바겐 등과 어깨를 견주고 있습니다. 경쟁자들은 대부분 지역별 조직구조를 갖고 있는 데 비해 현대 · 기아차는 기능별 총책임자가 총괄하는 체제이지요. 연구 결과가 나오는 대로 관련 논문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기고할 예정입니다. "

미국 뉴저지주립대 경영대 조교수를 지냈던 그는 강좌를 처음에 개설할 때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다고 털어왔다. "현대차를 홍보하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에서부터 공정성을 중시해야 하는 대학이 특정기업의 강의를 개설할 수 있느냐는 등의 비난에 이르기까지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런 부정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진정성을 믿어주며 강의 개설을 허락한 대학 측과 각종 오해를 무릅쓰고 강사를 파견해주고 있는 현대차 경영진의 결단이 없었더라면 기업특강은 불가능했다"며 "현대차 기업특강이 좋은 모델로 자리잡아 다양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사례연구도 더욱 활성화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