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리스크에 속타는 대기업…3분기 수천억 장부상 손실
국내 간판기업들이 3분기에 막대한 환(換)손실을 입었다. 지난 7~9월 3개월간 원 · 달러 환율이 급등(원화가치 하락)하면서 원자재 구입비용이 늘어나고 재무제표에 반영되는 외화부채 평가손이 커진 탓이다. 기업들은 "고환율이 수출기업에 유리하다는 것도 이젠 옛말"이라고 입을 모은다.

27일 3분기 실적을 발표한 하이닉스반도체의 순손실은 5630억원에 달했다. 3분기 영업손실(2770억원)과 비교해도 두 배가 넘는 규모다. 순손실이 급증한 건 환율변동 탓이다. 기업들은 매분기 말에 외화표시 부채를 원화로 환산한 평가손익을 영업외 손익으로 계상해야 한다. 이때 기준환율은 분기 평균 환율이 아닌 분기말일 기준 환율을 적용한다. 그런데 3분기에 해당하는 지난 7월부터 9월 사이에 원 · 달러 환율은 100원 넘게 급등했다.

7월1일 1066원60전이던 원 · 달러 환율은 9월30일 1178원10전으로 올랐다. 달러를 기준으로 한 외화부채는 그대로인데 원화로 환산하면 부채규모가 급증하게 돼 평가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장 · 단기 외화부채가 25억달러인 하이닉스는 부채규모에 변동이 없음에도 3개월 사이에 원화환산 부채가 2500억원이 늘었다.

철강 · 항공 · 해운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철광석이나 석유 등을 도입하거나 시설 투자를 위해 달러를 많이 빌린 상황에서 원 · 달러 환율이 급등해 회계상 평가손실이 급격히 늘었다.

포스코는 3분기 영업이익이 전분기 대비 27% 줄어든 1조870억원이었으나 같은 기간 순이익은 84% 감소한 2485억원에 그쳤다. 9조원에 달하는 외화부채를 원화로 환산한 평가손실이 8000억원가량에 달했기 때문이다. 현대제철도 3분기에 영업이익은 2870억원이었지만 1271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역시 3972억원에 달하는 외화부채 평가손이 반영된 탓이다.

대한항공도 3분기 2393억원의 영업이익을 내고도 5243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대한항공은 원 · 달러 환율이 10원 오르면 연간 64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아시아나항공도 3분기에 1300억원대의 영업이익에도 불구하고 순손실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LG그룹 주력계열사들의 환손실도 컸다. LG전자는 3분기에 1600억원의 외화관련 환손실을 봤다. 원자재 구입 과정에서 생긴 매입채무 평가손실이 1200억원,외화부채 평가손실이 400억원에 달했다. LG디스플레이도 3300억원의 환손실을 기록했다. 재무제표상 부채로 잡히는 외화선수금 평가손이 1300억원,외화부채 평가손이 2000억원이었다.

기업들은 3분기 환손실이 회계상의 숫자일 뿐 실제 현금이 빠져나간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원 · 달러 환율이 하락하면 언제든 평가차익이 생긴다는 얘기다.

그러나 외화부채도 언젠가는 갚아야 할 돈이란 점에서 환손실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강구 중이다. 최종태 포스코 사장은 "환손실을 줄이기 위해 환율변동에 따른 환헤지 또는 스와프 등의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며 "환율 안정화 추세를 봐 가면서 외화 차입금 비중도 점차 줄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명/장창민/정인설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