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어느 날 오후. 22세의 리처드 브랜슨은 자신이 창업한 우편주문 음반판매회사 버진레코드의 직원들과 술집에 앉아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었다. 주제는 음악 천재 마이크 올드필드. “15살짜리가 그 모든 악기들을 그토록 멋들어지게 연주할 수 있다니 환상적이지 않아?” “그런데 음반회사들은 왜 관심이 없는 걸까.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잖아.” “우리가 직접 하자. 우리가 직접 음반회사를 차려서 버진레코드의 첫 번째 작품으로 마이크의 앨범을 발표하는 거야.”

모두들 브랜슨이 취했다고 생각했다. 당시 버진레코드는 소규모로 우편 주문 사업을 하고 있었을 뿐 음반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음반을 직접 제작해 유통하자는 아이디어는 ‘도박’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날의 결정은 오늘 세계 30여개국에서 20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버진그룹의 첫 번째 도약을 이끌어냈다. 올드필드의 앨범 ‘튜블러 벨스’는 5년간 음반차트에 올라 영국에서만 200만장이 팔렸다. 이후 1970년대 펑크록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음반업계를 뒤흔든 섹스피스톨스와 롤링스톤스, 필 콜린스, 재닛 잭슨 등과 잇따라 계약하면서 버진레코드는 세계 최대 독립 음반사로 발돋움했다. 1987년 주식시장에 상장한 버진레코드는 1992년 10억달러(1조1100억원)에 EMI에 매각됐다.

◆‘영국의 잡스’

“평생 얼마나 벌었느냐로 기억되는 사람은 없다. 은행계좌에 10억달러를 넣어둔 채 죽든, 베개 밑에 20달러를 남기고 죽든,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뭔가 특별한 것을 창조했는지, 다른 사람의 인생에 진정한 변화를 일으켰는지 여부다.” 영국 버진그룹의 창업자이자 회장인 리처드 브랜슨(61)의 이 말은 지난달 타계한 스티브 잡스의 철학과 오버랩된다. 실제로 그는 ‘영국의 잡스’라 불릴 만큼 ‘창조적인 기업가’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잡스의 창조 영역이 정보기술(IT)에 집중된 반면 브랜슨의 관심은 모든 산업에 걸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6세 때 난독증을 극복하기 위해 학생잡지 ‘스튜던트’를 만든 그는 인기 음반 광고를 실어 첫 번째 성공을 거뒀다.

이후 버진레코드로 사업 기반을 마련한 뒤 1984년 항공사 버진애틀랜틱항공, 1999년 이동통신사 버진모바일, 2004년 우주관광사 버진갤럭틱 등 30여년간 200여개 기업을 세웠다. “기업가정신의 핵심은 자본이 아니라 아이디어”라고 주장하는 브랜슨은 사업 아이템 발굴부터 브랜딩, 시장 개척, 서비스 등 모든 부문에서 창의성을 강조한다.

◆버진 브랜드의 힘

‘괴짜 사업가’로 알려진 브랜슨은 끊임없는 도전으로 유명하다. 초고속 보트를 타고 최단시간 대서양 횡단 기록에 도전했고, 열기구를 타고 세계 일주를 시도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소형 잠수함을 타고 5대양 심해 탐험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우주관광업체도 세웠다. 이 같은 도전은 그를 ‘화제의 인물’로 만들어 버진그룹 브랜드를 세상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

브랜슨에게 도전과 버진그룹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브랜슨은 “내가 도전하는 이유는 버진(Virgin)이라는 브랜드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제껏 사람들이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는 곳에 도전한다는 의미의 브랜드 가치를 실천하는 것이다.

브랜슨은 버진 브랜드를 홍보하는 데 기꺼이 자신을 내던진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내가 얼마나 다양한 복장을 착용해봤는지 다 헤아리기 힘들다”고 말할 정도다. 그는 화장을 하고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인도 왕자처럼 차려입고 드럼을 치면서 뭄바이 빌딩 꼭대기에서 뛰어내리기도 했다. 2002년 버진모바일이 미국에 진출했을 때는 맨해튼 타임스퀘어에서 휴대폰으로 장식한 팬티만 입은 채 “버진모바일의 미국 이동통신 서비스는 말 그대로 감출 게 아무것도 없다”고 외쳤다. 브랜슨은 “내 시간의 3분의 1은 광고에, 3분의 1은 새로운 모험에, 3분의 1은 문제 해결에 투자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호주 항공사 버진블루는 브랜드로 기존 시장을 뒤엎은 대표적인 사례다. 버진블루가 호주 항공시장에 진출했을 당시 시장은 콴타스와 안셋이 양분하고 있었다.

버진블루는 시장 진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당신이 정육점에서 하루종일 힘들게 일하고도 미소지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찾는 여객기 승무원입니다”는 광고를 실었다. 장시간 좁고 제한된 공간에 서서 손님들을 접대해야 하는 승무원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을 버진의 방식으로 재미있게 묘사한 이 광고는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 같은 브랜드 전략과 경유지를 줄인 직항로 개설, 비용이 저렴한 인터넷 예약 등 효율적인 사업 전략이 시너지를 발휘하면서 버진블루는 승승장구했다. 불과 1년새 기업가치는 25배 뛰었다. 경쟁사 안셋의 주주였던 싱가포르항공이 1000만달러를 들여 설립한 버진블루를 2억5000만달러에 사겠다고 나선 것이다. 싱가포르항공은 안셋이 위협받자 인수를 제안했다. 그러나 버진블루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인수 제안 거절 소식이 전해진 바로 다음날 안셋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기업가정신, 사업의 고동치는 심장

버진블루의 최고경영자(CEO) 브렛 고드프리는 버진그룹의 유럽항공사 버진익스프레스의 임원이었다. 일 때문에 브뤼셀에 머물렀던 호주 출신의 고드프리가 회사를 그만두고 가족들이 있는 호주로 돌아가겠다고 했을 때 브랜슨은 “호주에서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다. 고드프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고드프리는 호주 저가 항공사 설립을 제안했고, 이 제안으로 버진블루가 설립됐다. 버진블루의 주식 상장으로 8000만호주달러를 벌어들인 고드프리는 호주에서 ‘45세 이하 가운데 가장 부유한 인물’이 됐다.

브랜슨은 버진블루가 버진이 추구하는 ‘브랜드 벤처 자본주의’의 생생한 모델이라고 말한다. 브랜드와 기업가정신이 결합된 이 모델은 전 세계 200여개 버진 계열사를 키워낸 힘이다.

브랜슨은 모든 직원들에게 기업가정신을 가지라고 강조한다. 직원들 위에 군림하려고 하기보다는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스스로 움직이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기업가정신은 사업의 고동치는 심장이다” “훌륭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을 자유롭게 하라”는 것이 그의 인재경영 철학이다. 이 같은 경영철학 덕분에 현재까지 110여명의 버진그룹 직원들이 백만장자나 억만장자가 됐다.

◆“지구온난화 막으면 2500만달러 드립니다”

2006년 늦여름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영국 홀랜드파크에 있는 브랜슨의 집을 찾았다. 지구온난화 시나리오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날 3시간의 프레젠테이션은 브랜슨을 ‘환경운동가’로 변신시켰다. 그는 버진그룹이 수년간 운송사업에서 벌어들이는 30억달러(3조3400억원)의 수익을 환경문제 해결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2007년에는 ‘버진어스챌린지(Virgin Earth Challenge)’를 발표했다.

대기에서 상당한 양의 온실가스를 제거하거나 이동시키는 기술을 상업화하는 방안을 제안하는 사람에게 2500만달러(278억원)의 상금을 주는 프로젝트다. 이 같은 업적을 인정받아 브랜슨은 2008년 유엔으로부터 ‘올해의 시민’으로 선정됐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