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활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 온 월드와이드웹(www)이나 페이스북,유튜브에는 공통점이 있다. 혁신적 서비스가 필요했던 사용자(user) 자신이 직접 개발했다는 점이다.

월드와이드웹은 1989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일하던 팀 버너스리가 연구원들 간에 손쉬운 소통을 위해 제안하면서 탄생했다. 페이스북은 2003년 하버드대 학생이던 마크 저커버그가 2003년 학교 내 기숙사 네트워크를 해킹해 여학생 정보를 수집,친구들에게 장난스런 정보를 제공하는 페이스매시(Facemash) 사이트를 오픈한 게 출발이다.

흔히 혁신적인 제품 또는 서비스는 이를 판매하는 기업이 개발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 MIT 경영대학원의 폰 히펠 교수에 따르면 선진국의 다양한 산업재와 소비재 시장에서 일어나는 기술혁신의 많은 부분은 이를 제조하는 기업체가 아니라 이를 이용하는 사용자,남보다 앞서 개선에 나서는 선도 사용자(lead user)에 의해 이뤄진다.

◆사용자 혁신으로 성공한 기업들

애플의 최초 컴퓨터인 '애플-1'은 워즈니악이 재미삼아 만든 컴퓨터를 스티브 잡스가 보고 1976년 상업화를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스포츠 용품이나 완구,시계,그리고 요즘 주목받는 스마트폰의 앱(응용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사용자혁신의 사례는 굉장히 많다.

스위스 시계브랜드 스와치는 사용자 혁신을 적극 활용하는 대표 기업의 하나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최고급 명품 거리인 비아 델라 스피가에 사용자가 시계를 직접 디자인할 수 있도록 한 컨셉트 스토어를 개장했다. 소비자들이 시계의 재질과 색깔,보석,액세서리 등을 직접 고르면 매장 내 작업장에서 시계를 제작해 판매한다. 이곳에서 개발된 제품들은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고 제품을 품평하는 사용자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덴마크 레고도 신제품 개발에 사용자 혁신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회사다. 레고는 1998년 소프트웨어와 전자제어 장치 등을 장착,기존 레고블록을 움직일 수 있도록 한 마인드스톰스(Mindstorms)를 출시해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본격적인 성공은 그 뒤에 시작됐다. 스탠퍼드대학원에 다니던 케코아 프루드푸트가 레고 사이트를 해킹해 마인드스톰스의 전자제어 알고리즘을 공개했고 수많은 응용 애플리케이션 개발이 이어졌다.

레고는 처음엔 법적 대응까지 고려했으나 수개월간 상황을 지켜본 결과,사용자들의 창의력이 제품 경쟁력을 강화하고 시장을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레고는 마인드스톰스 소프트웨어 라이선스에 '해킹의 권리(right to hack)'를 명기했다. 마인드스톰스 후속 모델 개발 때는 처음부터 'Design by me'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사용자들에게 제공하며 선도 사용자(lead user)들을 적극 활용했다. 사용자 혁신을 제품개발에 전략적으로 적용함으로써 고객의 충성도를 높였고 이들을 레고 개발인력으로 활용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뒀다.

◆꾸준히 확산되는 사용자 혁신

캐나다와 네덜란드에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제조업체 중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50% 이상의 기업이 생산공정 및 제품력 개선을 위해 사용자 혁신을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1975년 이후 은행들이 새로 제공한 47개 금융서비스의 85%가 사용자에 의해 초기에 개발됐다는 보고도 있다.

사용자 혁신이 빠르게 증가하는 배경엔 사용자 개발을 지원하는 도구(toolkit) 개발 및 보급이 늘고 인터넷을 통한 정보공유가 활발해진 덕분이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앱스토어 활성화도 한 몫 했다. 일례로 스마트폰 운영체제인 애플의 iOS나 구글의 안드로이드는 모두 사용자들이 원하는 응용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사용자 혁신의 핵심은 선도 사용자(lead user)의 적극적 활용에 있다.

선도 사용자를 활용한 혁신은 기존의 시장 조사나 시장 세분화 전략을 통한 신제품 개발보다 더 큰 성공 가능성을 제공한다. 고객의 요구 등에 대한 일반적인 시장조사보다 실제 선도 사용자가 누구인지를 찾아 이들이 개발한 사용자 혁신을 상업화하는 게 성공 가능성이 높은 신제품을 개발하는 길이 된다는 의미다. 레고나 뱅&올룹슨 등은 선도 사용자를 활용한 혁신을 주도하는 기업이다.

얼마 전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진행한 기술혁신 실태조사 등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사용자 혁신 비중은 17.7%로 대체로 40%를 웃도는 선진국에서 비해 크게 낮다. 사용자 혁신을 다른 기업과 공유한 비중도 3.2%로 선진국의 25%보다 현저히 적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혁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용자 혁신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이 요구된다. 동시에 정부도 사용자 중심의 혁신을 돕는 산 · 학 · 연 협력 프로그램 지원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 리드 유저

Lead user.제품이나 서비스의 기능 및 품질 개선 필요성을 다른 소비자보다 일찍 인식하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시장 트렌드를 선도하는 사용자를 말한다. 1990년대 초부터 사용자 혁신(user innovation)을 연구해온 폰 히펠 MIT 경영대학원 교수가 정립한 개념이다. 자동차 브레이크시스템의 리드 유저는 자동차 경주 드라이버가 될 가능성이 크다.


김영배 KAIST 교수 ybkim@business.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