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법정 떠난 판사들 어디 있나
체코의 문호인 카프카가 지은 《심판》을 보면 법원이 온통 뒤죽박죽이다. K라는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이른바 불구속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의아스러운 것은 정작 피고인 K를 재판할 판사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보이지 않는 판사의 문제는 《심판》의 마지막 장면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법원의 최종판결이 나왔다면서 다짜고짜 K를 숲속으로 데리고 가 처형하는 엽기적인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과연 판사는 어디 있는가. K는 절규한다. 보이지 않는 판사나 볼 수 없는 판사가 사형이라는 유죄판결을 내렸다면 이 얼마나 황당하고 놀라운 일인가.

그런데 바로 이 모습이 최근 우리 사법부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웬일인가. 판사는 어디에 있어야 하나. 당연히 판사는 법원에 있어야 한다. 거기서 피고인의 유·무죄를 가늠해야 한다. 사법적 판단은 너무나 엄숙하고 비장한 일이기에 판사는 어느 때라도 법원을 떠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일부 판사들을 보라. 그들은 제자리, 법원의 자리를 지키지 않고 있다. 일부 판사는 법원의 게시판에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사법주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문제를 연구할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라고 말이다. 이에 법관 170여명이 동조하고 나섰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판사들은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이라고 비아냥거리면서 페이스북에 있다. 또 라디오에 있는 판사들도 있다. 그곳에서 한·미 FTA를 격렬하게 비난하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문제의 판사들이 있는 곳은 각기 다르지만 한결같이 자기자리를 이탈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물론 판사라고 해서 뼛속까지 반미의 생각을 가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또 한·미 FTA를 반대한다는 나름대로의 의견이나 이념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의 정치소신을 시민단체나 정당정치인, 혹은 심지어 연예인처럼 선정적이며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표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우리사회의 사법부 판사들은 남부럽지 않은 특권을 누리고 있다. 선거에 의해 뽑히지 않는다는 것도 현저한 특권이지만, 보다 더 중요한 특권이 있다.

판사들의 유·무죄 판단은 ‘성역’처럼 인정받는다는 점이다. 판사들의 유·무죄 판단에 대해 불만이 있고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판결의 이유조차 물을 수 없다. 그 점에서 국회의원의 면책특권과 다를 바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판사들은 온갖 형태의 유·무죄 판결을 낮에 하고도 저녁 때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것을 보장받는다. 만일 사법적 판단이 잘못됐다고 앙심을 품은 나머지 보복을 하겠다며 판사의 집 근처에서 기다리다가 그가 퇴근할 때 몰래 석궁을 쏘면 엄한 처벌을 피할 길 없다.

그럼에도 정작 우리 판사들은 자신이 수행하는 업무의 엄숙성을 모르고 있다. 판사들이 정치적 문제에 대해 스스로 나와 시비를 가리겠다고 하는 것이 부당한 이유는 판사들의 재판결과에 대해 외부에서 시비를 가리겠다고 나서는 일이 부당한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공직(公職)과 천직(天職)을 맡았음에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성직자들이 4대강에 반대한다며 머리를 깎고, 제주도 해군기지를 반대한다면서 주민등록도 옮기고 비장한 마음으로 미사를 드린다면, 성직자가 자신의 자리를 벗어난 사례다. 또 학생들을 전심전력을 다해 가르쳐야 할 교사들이 민노당에 가입하고 정치적 성명서를 낸다면, 이들도 자신의 자리를 벗어난 교사들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자리를 벗어난 판사들이 등장할 차례인가. 모름지기 정치는 정치인들에게 맡기고 판사는 판사의 일에 전념하도록 하라.

박효종 < 서울대 교수·정치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