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균형재정 위한 'PAYGO' 법제화를
한나라당 고승덕 의원이 정부의 균형예산 달성을 의무화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내용은 정부가 장기적으로 균형예산을 이룰 수 있는 방안과 의무를 명시하며, 국가채무관리계획을 수립할 때 균형예산을 고려토록 한 것이다.

세계경제는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으로 인해 또다시 요동칠 전망이다. 20세기 말부터 가속화된 세계경제의 개방화로 인해, 한 국가의 위기는 다른 국가들에 연쇄적으로 반응을 일으키므로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시련을 줄 것이다. 이제 한국의 경제운용은 우리가 잘한다고 해서 잘 굴러가는 게 아니고 국제경제환경의 변화로 인해 얼마든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런 속에서 한국이 대처할 수 있는 길은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유럽은 복지팽창 정책을 오랫동안 지속했기 때문에 재정건전성은 이미 허물어졌고, 그래서 재정건전성의 중요성을 알지만, 한번 시작한 복지정책을 다시 거두기 어렵다. 사실상 국가부도 상태인 그리스에서 복지축소안이 국민들의 심한 저항에 부딪치는 현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한국에서 가장 큰 현안은 복지정책이다. 내년 정치일정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복지확대 경쟁을 하고 있다. 공짜복지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 정책경쟁으로 번지고 있는 실정이다. 개발된 복지정책도 빈곤층을 위한 것이 아니다. 복지라는 용어로 포장해 국민들을 현혹시키기 쉽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복지는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빈곤복지, 보험복지, 서비스복지가 그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복지라는 이름을 앞세워 서비스복지를 모든 계층으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이미 무상급식이란 정치상품으로 정치 경쟁이 일어났고, 그것은 상당부분 성공적이었다.

서비스복지를 부자에게까지 무료 제공하자는 정책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서비스 복지를 확대하기 위해선 세금을 인상해야 하는데, 세금은 경제주체들의 경제 활력을 떨어뜨린다. 둘째 공짜는 그 재화의 가치를 제로로 만든다. 분명 비싼 세금으로 재화를 공급하지만, 공짜재화의 가치는 떨어진다. 이미 무료급식을 시행한 서울의 일부 초등학교에서 무상우유가 버려지는 현실이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정치인들의 복지를 통한 재정확대 행위는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산업화 시기에는 비교적 정부예산을 경제적 논리에 맞춰 배분했다. 그러나 민주화 시기를 거쳐오면서 국민 개개인의 정치적 역량이 높아짐에 따라, 정치권에선 유권자 마음을 잡는 정책이라면 무엇이든 좋다는 분위기다. 하이에크가 말하는 ‘무제한적 민주주의(unlimited democracy)’가 한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인들에게 한국의 장래와 경제적 논리를 주문하는 건 애당초 불가능하다. 이제 표가 되면 ‘좋은 정책’이고, 표가 안되면 ‘나쁜 정책’인 세상이 돼 버렸다.

정치인의 지출팽창 행위를 줄이는 방법은 법률로 제정하는 길뿐이다. 그래서 이번에 제안된 국가재정법 개정법률안은 시기적절한 정책안이다. 지금까지 행정 차원에서 추진했던 건전재정을 법률로 규정하는 것은 분명 발전이지만, 의무를 강조하는 수준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 독일과 스위스에선 헌법으로 규정하고 있을 정도다.

균형재정을 달성하는 구체적인 방법도 명시돼야 한다. 인기 위주의 정책안이 제안됐을 경우에 재원조달 계획을 규정하는 ‘신규 의무지출에 대한 재원마련 대책을 의무화한 원칙(PAYGO·Pay As You Go)’을 법률화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세입 내 세출 원칙을 강제하기 위해 세입증가율 이내 지출을 법률화하는 방법도 있다. 이제 정치인들의 양심과 도덕에 의존하기보다는, 구체적인 법률로 정치인들의 행동을 규제해야 할 시기이다.

현진권 < 아주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