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조선사 구조조정 강도 높인다
채권단은 중소 조선업체들의 위기가 심각한 단계까지 왔다고 보고 일제 점검에 착수했다. 살릴 기업은 살리되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기업은 빨리 정리해 파장을 최소화한다는 구상이다.

A은행 부행장은 “건설업종과 달리 조선업종에 대해선 채권단이 공동으로 대응할 방법이 별로 없다”며 “각 금융회사별로 회생 가능성이 있는 조선업체에만 긴급 자금을 지원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중소 조선사 구조조정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진 후 상시적으로 진행돼 왔다. 은행들은 채무를 조정하거나 유동성을 지원해주는 방식으로 조선사 ‘생명’을 연장시켜줬다.

하지만 최근 유럽발 재정위기가 심화돼 조선업종 침체가 악화하자 금융권 태도에 변화가 생겼다. B은행 관계자는 “2~3년 전 저가로 수주했던 물량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조선업체들의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중소 조선사들에 돈을 더 빌려줘봤자 부실 채권이 될 게 자명한 만큼 일부 기업에선 빨리 손을 떼는 게 낫다는 판단”이라고 전했다. 그는 “자산 매각을 우선 추진하되 선박용 블록 공장으로 업종을 전환시켜 파는 것도 대안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내년엔 조선업체들의 회사채 만기가 집중돼 있어 불안감이 더 크다. 2009년 조선사들이 대규모로 발행했던 3년짜리 회사채가 내년 상반기에 대거 돌아온다. 상위 5개사의 차환 물량만 2조1300억원에 달한다.

채권단은 현재 구조조정 대상인 23개 중소 조선사의 구조개선 작업을 더욱 서두르기로 했다. 우선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인 21세기조선과 SLS조선, 대한조선 등 3개사 중 대한조선에 대해선 대우조선해양에 위탁 경영을 맡기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세광조선과 삼진조선에 대해선 패스트트랙 프로그램(일시 유동성 부족에 빠진 기업에 대해 채권은행이 신속하게 자금을 지원하는 제도) 절차를 밟도록 했다. C&중공업 등 10개사에 대해선 경매나 채권 회수 등의 방법으로 가급적 빨리 정리한다는 방침이다.

정부 역시 금융권과의 협조를 통해 매각 위탁경영 업종전환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 계획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중소 조선사라 하더라도 대기업 계열이거나 여러 조선사와 거래하는 협력업체에 대해선 지원을 늘려가기로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호조선이다. 경남은행 우리은행 등 채권단은 공동 담보로 잡고 있던 자재 48억원어치 등에 대한 담보권을 최근 포기하고 삼호조선이 짓다 만 배를 마저 만들 수 있도록 했다. 박영빈 경남은행장은 “일단 조업을 재개해 회생시키는 쪽으로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조선사들의 연쇄 도산이 가져올 파장이 만만치 않은 만큼 제도를 서둘러 정비한다는 방침이다. 우선 연내 종료되는 패스트트랙을 재연장하기로 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 긴급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해선 패스트트랙 제도가 필요하다”며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연장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재길/박동휘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