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국회가 9일 막을 내린다. 그렇지만 새해 예산안을 비롯한 시급한 민생 현안들은 여야의 정쟁에 밀려 제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한 채 회기를 넘기게 됐다. 지난달 2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에 반발해 민주당이 국회 일정을 전면 보이콧하면서 17일을 허송세월했다. 법정 처리 시한이 지난 2일이던 예산안은 여야가 심의 한번 하지 못했다.

당내 정치싸움으로 민생은 뒷전이라는 따가운 비판이 일자 정치권은 8일 일단 국회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했다.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귀빈식당에서 회동을 갖고 오는 12일 임시국회를 열기로 했다. 합의라기보다는 예산안 처리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여야는 내년도 예산안과 농업소득보전법을 비롯한 한·미 FTA 피해보전대책 관련법 등 시급한 민생 법안을 연내에 처리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김용덕, 박보영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과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 선출안을 최우선적으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그렇지만 여야의 이런 합의가 제대로 지켜질지는 불투명하다. 여야 간 대립은 물론 여야 내부의 극심한 내홍에 발목이 잡혀 있는 형국이다. 특히 한나라당은 당 진로 문제를 놓고 사분오열하면서 집권당 기능을 상실한 상태다. 홍준표 대표는 이날 △재창당 준비위 구성 △의원 기득권 불인정 △정책쇄신기획단 발족 △과감한 인재 영입 등의 쇄신책을 발표한 뒤 대안을 마련할 때까지 대표직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원희룡 최고위원 등 쇄신파는 강하게 반발했고 친박계도 등을 돌려 쇄신책은 사실상 퇴짜를 맞았다.

쇄신파 의원 일부는 탈당을 검토하고 있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9일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홍 대표 체제의 붕괴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따라 각종 민생법안 논의는 또 다시 뒷전으로 밀리면서 정상적인 국회 운영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내년도 예산안은 이달 말 처리할 가능성이 높지만 여당은 쇄신 문제로, 야당은 통합 문제로 민생 법안은 차일피일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렇게 되면 내년 4월로 치러질 예정인 19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제대로 국회를 가동하기가 쉽지 않아 민생 현안 상당수가 18대 국회에서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내년 1월1일 발효 목표인 한·미 FTA 준비도 여야의 첨예한 대립으로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정부 관계자는 “예산안 처리가 늦어지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내년도 사업 집행이 지연될 수밖에 없어 결국 그 피해는 서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