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제2의 '브란트'가 필요한 일본
1970년 12월7일. 2차대전 이후 처음 폴란드를 방문한 당시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유태인 희생자 위령탑이었다. 그는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끓고 나치 독일의 만행을 사죄했다. 그의 모습이 전 세계로 타전되자 세계는 큰 박수를 보냈다. 이스라엘 총리는 “용서는 하지만 잊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동서유럽의 화합에 기여한 브란트 총리는 다음해인 1971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당초 12일부터 이틀간 중국을 방문키로 했던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의 방중이 연기됐다.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중국 네티즌들의 힘이 작용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노다 총리의 방중계획이 발표된 지난 7일부터 중국의 인터넷은 들끓었다. 난징대학살이 일어난 지 74주년이 되는 13일에 일본 총리가 사과도 없이 방문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쏟아져 나왔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는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묵념하고 있는 브란트 전 총리의 사진이 대거 올라왔다. 중국의 네티즌들은 세계를 향해 사과한 브란트와 방중 일정을 연기한 노다 총리를 비교하면서 일본을 비난했다. 특히 노다 총리는 과거 난징대학살로 희생된 중국인이 20만명이 넘는다는 중국 측 주장에 대해 과장됐다고 반박한 인물이다. 결국 여론을 의식한 중국 정부가 일본 측에 방중 연기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노다 총리의 방중이 연기됐다고 해도 한번 불붙은 중국인들의 반일(反日)감정이 쉽게 사그라들지는 않고 있다. 네티즌들은 “일본 총리가 난징대학살 기념일을 하루 이틀 피해서 방문한다는 것도 용인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베이징 소식통에 따르면 일본은 “노다 총리의 방중은 취소가 아니라 연기된 것”이라고 공식입장을 밝힌 뒤 연내 방중을 원칙으로 일정을 협의 중이다. 그러나 진정한 사과없이 날짜만 바꿔 방중하려는 것은 여론을 악화시켜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 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내년 수교 40주년을 맞는다. 양국의 우의를 다지는 다채로운 행사가 많이 열릴 것이다. 영토문제로 인해 양국에 냉기류가 흐르기도 하지만 복잡한 동북아 정세로 인해 중국과 일본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과거 청산을 위한 진심어린 노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김태완 베이징 특파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