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가 복지다] 노인 61% "노후준비 안돼 있어…다시 일해야 생계유지"
지난 5일 오전 9시 서울 지하철 시청역. 김씨(남·67)는 충정로역으로 향하는 전철을 탄 뒤 승객들이 버리고 간 신문을 자루에 주워담았다. 오전 6시30분부터 2시간30분째 서울 지하철 2호선을 돌았다. 김씨는 이날 96㎏의 폐지를 모았다. 수집상에 ㎏당 150원이 약간 넘는 가격에 폐지를 넘겨주고 1만5000원을 손에 쥐었다. 10여년 전 중소기업에서 퇴직한 김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계속하고 싶지만 마땅한 곳이 없다”며 “그나마 폐지라도 열심히 모아 용돈을 벌고 있다”고 말했다.

청소용역 회사에 다니는 김씨(여·62)는 매일 서울 불광동 일대 아파트와 연립주택을 돌며 건물 바닥을 닦는 일을 한다. 이렇게 매일 일하고 한 달에 140만원 정도 번다. 그는 “쉬고 싶지만 늦게 낳은 두 아이의 대학 등록금 때문에 일을 그만둘 수가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급증하는 은퇴 노인

노인 일자리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550만명에 달하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지난해부터 정년퇴직 연령에 진입하는 등 고령화가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 비중은 2010년 11%에서 2018년 14.3%로 늘어나고 2026년에는 20.8%에 달할 전망이다. 강규성 한국노인인력개발원 고령자친화형전문기업담당팀장은 “은퇴하는 노인들이 쏟아지고 있다”며 “국가가 재정을 투입해 일자리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맞물려 5~6년 뒤면 노인 일자리 문제가 지금의 청년실업 문제보다 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2010년 45.1%였다. 노인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빈곤층이라는 얘기다.

스스로 ‘노후 준비가 안 돼 있다’고 말하는 노인이 전체의 61%에 달했다.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이유로 ‘생계비 마련’(45.3%)이나 ‘용돈이 필요해서’(22.9%)라고 응답한 비율이 1, 2위였다.

노후 준비가 제대로 안 된 노인들은 일을 하고 싶어한다. 복지부에 따르면 일자리를 갖지 못한 65세 이상 노인 355만명 가운데 구직을 희망하는 노인은 114만명에 달했다. 하지만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 정부가 내놓는 일자리 대책에서도 노인들은 밀린다. 청년이나 여성 실업대책이 우선이다. 정부는 재정을 투입해 한 해 20만개 안팎의 노인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중 90%가량은 공공근로 같은 한시적인 일자리다. 노인들을 고용하는 고령자친화기업이나 노인 창업처럼 지속 가능한 일자리는 10%가 채 안 된다.

◆급속한 고령화…복지 대란 가능성

한국은 주요 선진국 가운데 ‘일하는 노인’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한다. 65세 이상 인구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2010년 29.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아이슬란드(OECD)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독일(4.0%) 네덜란드(5.9%) 등 서유럽 국가는 물론 미국(17.4%)이나 일본(21.8%)보다 높다.

그런데도 일을 하려는 노인이 많은 것은 복지 제도가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단기간에 고속 성장한 한국은 선진국과 달리 연금제도가 늦게 도입됐다”며 “연금도 받지 못하고 모아놓은 재산도 없어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하는 노인이 많다”고 지적했다.

저축액이 많지 않은 노인들이 대거 은퇴하면 ‘복지 대란’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고령화로 국민연금이나 노령연금뿐만 아니라 의료비 등 각종 사회적 지출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의 노인 부양 부담도 커진다. 지금은 생산가능인구(15~64세) 6.6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면 된다. 하지만 2030년에는 3명이 1명을 부양해야 한다.

한정란 한서대 노인복지학과 교수는 “일할 능력이 없거나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노인에게는 적절한 복지와 근로 경감이 필요하지만 일할 능력과 의사가 있는 노인에게는 일자리가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임현우/주용석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