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부동산 운용 기조를 적극적 투자·개발로 선회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외환위기 이후 무수익자산으로 간주해 보유 부동산 처분에 주력했던 삼성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1조원 이상을 들여 서울 요지 부동산을 잇달아 확보하면서다. 상반기 내 부동산자산운용사를 설립해 본격 투자에도 나선다.

삼성 계열사의 현금성 자산만 수십조원에 달하고 있어 부동산 시장에 파급효과가 적지 않을 전망이다.

◆반년 새 1조원 이상 투자

16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삼성자산운용의 부동산 부문을 분할해 부동산 전문 운용사를 세우기로 하고 이번 주 인허가를 신청하기로 했다. 자본금은 100억원 안팎이다. 삼성의 부동산 자산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목적이다. 삼성자산운용의 부동산 등 실물펀드 규모는 5600억원(일임·자문 포함)으로 운용자산(112조6700억원)의 0.4%에 불과, 고객 재산만 관리하려면 분리할 이유가 없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삼성물산도 그룹 부동산을 개발할 별도의 시행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은 서울 ‘알짜 부동산’ 확보에도 적극 뛰어들었다. 삼성생명이 최근 서울 강남역 KTB네트워크빌딩 입찰에서 2000억원을 제시해 우선협상자에 선정됐고 삼성화재는 역삼역 ING타워의 지분 67%를 이민주 에이티넘파트너스 회장으로부터 인수했다. 지난해 하반기 △삼성생명의 삼성동 한국감정원 부지 매입(2400억원) △삼성화재의 관훈동 대성산업 부지 매입(1400억원) △삼성자산운용의 삼성금융프라자(삼성동) 프라임타워(회현동) HSBC빌딩(봉래동) 매입(3963억원) 등 6개월 새 1조원가량을 썼다. 한 자산운용업체 관계자는 “구조조정으로 나오는 물건에는 삼성이 늘 인수후보자 리스트 상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에 뒤진 삼성

업계는 삼성의 행보가 외환위기 이후 10여년 동안 부동산을 처분해온 것과는 확연히 다른 점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2002년 13개 건물, 2003~2004년 여의도 키움파이낸스스퀘어(과거 여의도 삼성생명 빌딩), 순화동 HSBC빌딩 등 4개 빌딩을 팔았다. 2008년 종로구 송현동 옛 주한 미대사관 직원숙소 터를 2900억원에 대한항공에 매각했고 2009년엔 순화동 SK빌딩을 독일 리프펀드에 900억원대에 팔았다. 이에 따라 지난해 그룹의 부동산 규모가 롯데에 뒤처졌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주요 상권에 백화점 마트 등을 가진 롯데가 13조8724억 원으로 10대 그룹 중 1위였고 삼성은 13조4583억원으로 2위였다.

부동산 운용 기조를 바꾼 것은 그룹 최상부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지난해 9월 그룹 내 부동산 총괄 임원이 교체되고 부동산 전문가로 꼽히는 인채권 삼성생명 상무와 최영욱 삼성자산운용 부동산총괄 전무가 운용전략을 다시 짜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동산 자산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 방안을 TF에서 연구해왔다”며 “부동산자산운용이 출범하면 계열사들이 가진 부동산 자산을 총괄해 관리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에 영향 줄까

부동산업계에서는 삼성이 적극적 투자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침체로 부동산 가격이 상대적으로 싼 데다 핵심 업무지역 빌딩은 안정적 수익을 거둘 수 있어서다. 향후 시세차익까지 노려볼 만한 알짜 매물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자산관리업체인 글로벌PMC의 김용남 사장은 “대형 빌딩의 수익률은 주식시장보다 변동성이 작고 안정적”이라며 “포트폴리오의 한 축으로 부동산 분야를 눈여겨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삼성의 적극적 투자가 이어질 경우 대형빌딩 완공 등으로 침체에 빠진 서울 부동산 경기에 긍정적 영향도 예상된다.

김현석/김진수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