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에서 여성 파워가 커지고 있다.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에 여성 관장이 등장했다. 화가에서부터 미술관과 상업화랑, 미술품 경매회사 경영자까지 ‘우먼 파워’가 거세다.

미술계 '우먼 파워'

◆새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정형민 씨

배순훈 전 관장의 사표로 공석이 된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정형민 서울대 동양학과 교수(60)가 19일 선정됐다. 국내 대표 미술관장을 여성이 맡은 것은 처음이다. 미국 웨슬리대에서 서양미술사를 공부한 정 신임 관장은 서울대미술관장직을 맡아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날 “경복궁 옆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과 관련, 마케팅과 기획 분야에서 유능한 사람을 찾다 보니 정 교수를 임명하게 됐다”고 말했다.

앞서 큐레이터 출신의 김홍희 씨(64)는 지난 12일 서울시립미술관의 지휘봉을 잡고 여성 관장시대를 열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이 미술 행정의 핵심 보직이기 때문에 이번 인사를 매우 파격적인 것으로 미술계는 받아들이고 있다. 경쟁 관계인 두 미술관이 여성 관장을 내세워 어떤 마케팅 전략을 펼칠지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김 관장은 “미술이 여성의 감각적인 세심함과 치밀함을 요구하는 분야”라며 “전략기획 단계에서부터 큰 그림을 꼼꼼히 볼 줄 아는 여성의 능력이 돋보이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화랑 CEO 미술시장 발전 견인차

전국 화랑 300여곳 가운데 여성이 최고경영자인 곳은 약 100개에 이른다. 박명자 갤러리 현대 회장(69)을 비롯해 이현숙 국제갤러리 대표(67), 표미선 한국화랑협회장(63), 이옥경 가나아트갤러리 대표(51) 등은 화랑업계 ‘큰손’으로 꼽힌다.

박명자 회장은 1970년 상업화랑 1호인 현대화랑(갤러리 현대 전신)을 차린 후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이상범 유영국 등 대가들의 전시를 기획해왔다.

이현숙 회장은 알렉산더 콜더, 루이즈 브르주아 등 해외 대가들의 전시를 통해 뛰어난 경영능력을 과시했다. 표미선 회장은 미술계의 대표적인 중국통으로 베이징에 ‘표갤러리 베이징’을 운영하고 있다.

정두언 의원의 부인 이화익 이화익화랑 대표, 박형준 전 청와대 특보의 부인 조현 조현화랑 대표도 떠오르는 여성 경영인이다. 이들은 국제적인 규모의 대형 전시를 유치하면서 국내 작가들의 해외 진출과 마케팅에서도 성과를 올리고 있다.

박경미 PKM트리니티갤러리 대표, 손성례 청작화랑 대표, 유명분 카이스갤러리 대표 등도 ‘여풍’을 주도하고 있다. 미술품 경매회사인 K옥션 역시 지난해 여성 마케팅 전문가 조정열 씨(45)를 신임 대표로 영입해 사세를 넓혀가고 있고, 여성 화가로는 천경자 씨를 비롯해 방혜자 김수자 이숙자 이불 양혜규 구정아 씨 등이 국내외 화단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막강 파워 홍라희 관장

기업미술관 중에서는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 대표적이다. 홍 관장은 미술계 영향력 조사에서 거의 해마다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서울 한남동의 삼성미술관 리움을 비롯해 태평로의 플라토(옛 로댕갤러리), 호암미술관 등을 운영하며 국공립미술관에서 접할 수 없는 국내외 스타 작가 전시회로 승부를 걸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부인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51),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부인 정희자 아트선재센터 관장,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의 부인 박문순 성곡미술관장, 애경그룹 2세인 채형석 부회장(장영신 회장의 장남)의 부인 홍미경 몽인아트센터 대표도 있다.

미술평론가 정준모 씨는 “최근 ‘감성 경영’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이 중시되고 있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는 여성 경영인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