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가격 딜레마 빠진 현대차
“고가의 수입차는 잘 팔리는데 우리 차는 비싸다고 안 사니 고민입니다.”

김충호 현대자동차 사장은 최근 ‘한국 올해의 차’ 시상식 후 기자들과의 뒤풀이 자리에서 이렇게 고충을 털어놨다. ‘올해의 차’로 선정된 ‘i40’를 두고서 한 말이다.

이 차는 지난해 9월 출시 이후 1300여대만 팔렸다. 판매목표의 20%도 채우지 못했다. 김 사장은 “집에서도 이 차를 타는데 운전해보면 정말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며 “국내 소비자들이 알아주지 않는 게 안타깝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i40’는 현대차의 ‘가격 딜레마’를 여실히 보여준다. 현대차가 폭스바겐 ‘파사트’의 대항마로 이 차를 출시했을 때 자동차 마니아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 반응은 차가웠다. 3000만원 후반의 가격이 발목을 잡았다. 한 소비자는 “1.7ℓ 디젤 프리미엄 모델에 풀옵션을 더하면 3500만원”이라며 “아무리 차가 좋아도 쏘나타급의 국산 중형차를 3000만원을 주고 사기에 부담스럽다”고 했다.

가격만의 문제는 아니다. 비슷한 가격대의 폭스바겐 ‘골프’는 지난해 월 450대가 판매됐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가격을 올리면서 수입차와의 가격 차이가 좁혀지자 브랜드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수입차로 돌아서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기아차의 ‘프리미엄 전략’으로 합리적인 가격의 국산차는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아차가 지난달 출시한 ‘레이’는 1000㏄ 경차임에도 바이퓨얼 모델의 풀옵션을 선택하면 최고 1800만원에 육박한다. 유모차나 자전거를 접지 않고 실으려면 뒷좌석 슬라이딩과 6 대 4 분할시트 기능을 선택해야 하는데, 50만~70만원을 더 주고 고급사양을 구입해야 한다.

한 소비자는 “기본 사양은 신발장 등 없는 것이 많아서 고급 사양을 선택해야 하는데 조금 더 보태면 중형차를 살 가격”이라며 “풀 오토에어컨, 버튼시동 스마트키가 없어도 값싸고 연비 좋은 경차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던 프리미엄’은 현대차가 지난해부터 추진해온 브랜드 전략이다. 현대차 미국 마케팅을 맡고 있는 짐 샌필리포 이노션 미국법인 사장은 “귀금속 브랜드 티파니의 럭셔리함이 아니라 현대차는 애플처럼 경제성과 디자인을 갖춘 럭셔리함을 추구하겠다”고 말했다. 모던 프리미엄에 걸맞은 합리적 가격의 국산차를 기대한다.

전예진 산업부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