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조7000억 담은 외국인, 당분간 더 산다
“외국인 투자자를 만나 보면 한국 주식을 더 사겠다는 얘기만 한다. 팔고 싶어하는 투자자는 없다.”

전재현 신한금융투자 국제영업부 차장은 최근 외국인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달 실시한 3년 만기 장기 대출로 유럽 은행권의 신용경색 위험이 줄어든 데 이어 미국 중앙은행(Fed)이 초저금리(연방기금 금리 연 0~0.25%)를 2014년까지 유지하기로 하면서 외국인의 태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긴축 완화 기대감까지 더해져 외국인 매수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됐다.

영미계 자금 대부분 복귀

외국인은 26일 유가증권시장에서 4643억원어치를 순매수해 11거래일 연속 매수 우위를 이어갔다. 외국인의 강한 매수세 속에 코스피지수는 4.95포인트(0.25%) 오른 1957.18로 마감, 4거래일 연속 상승했다. 이달 외국인의 누적 순매수 금액은 5조7418억원으로 월간 단위로는 2009년 7월 5조9401억원에 이어 역대 두 번째 규모다.

지난해 8월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 신용등급 강등 사태로 빠져나간 영미계 자금은 대부분 돌아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영국계 자금은 이달 들어 1조6000억원어치의 국내 주식을 사들였다. 지난해 8~12월 5개월에 걸쳐 내다판 1조6700억원과 비슷한 규모의 주식을 다시 매수한 셈이다. 미국계 자금도 1조2000억원어치를 순매수해 작년 8~12월 순매도 금액(1조7000억원)의 70%가량을 재투자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자금도 속도는 느리지만 국내 증시로 복귀하고 있다. 이달 프랑스 자금은 3200억원, 룩셈부르크 자금은 3100억원을 각각 순매수했다.

외국인 매수세 전 업종 확산

외국인 매수세는 좀 더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선진국 중앙은행의 유동성 완화 정책이 지속되고 있고 국내 기업이 중국 긴축 완화 정책의 수혜를 입을 것이란 점에서다.

박인홍 삼성증권 해외법인사업부장은 “외국인 매수세가 정보기술(IT)주에 이어 자동차 철강 조선 등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며 “Fed가 2014년까지 초저금리를 유지하기로 해 외국인의 위험자산 선호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원재 한국투자증권 국제영업본부장은 “경기민감주 투자를 늘리고 있는 점도 외국인의 시각 변화를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프로그램 매매를 통한 외국인 매수도 지속될 전망이다. 박문서 KTB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지난해 8월 이후 차익거래를 통해 빠져나간 외국인 자금 3조2000억원 중 2조2000억원이 유입됐다”며 “1조원 안팎의 차익 매수 여력이 남았다”고 추정했다.

매수 강도는 약해질 가능성

외국인 순매수 규모가 역대 최대 수준에 가까워진 만큼 매수 강도가 약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대우증권이 과거 외국인이 대규모 순매수를 기록한 사례를 분석한 결과, 외국인이 월간 3조원 이상 순매수한 달에는 코스피지수가 평균 6.03% 상승했다. 그러나 그 다음달에는 외국인 순매수 규모가 1조원대로 줄고 코스피지수 상승률도 평균 0.51%로 낮아졌다.

한치환 대우증권 선임연구원은 “그리스와 민간 채권단의 국채 교환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고 포르투갈이 2차 구제금융을 신청할 가능성이 있어 외국인 매수 규모는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경수 신영증권 선임연구원은 “과거 사례를 보면 외국인이 매수하는 종목의 수익률이 오히려 부진할 때도 많았다”며 “외국인 순매수 종목 중에서도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매력이 있고 경기민감도가 높은 종목으로 투자 대상을 좁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승호/손성태/서정환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