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예금 감소 규모가 글로벌 금융 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수준을 넘어섰다. 경기가 심각하게 둔화하자 예금을 깨서 생활비 등으로 충당하거나 빚을 갚는 사례가 많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ㆍ국민ㆍ신한ㆍ하나ㆍ기업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총 수신은 지난해 말 779조995억 원에서 지난달 말 769조5415억원으로 한달 새 9조5580억원 줄었다. 지난해 12월 시중은행 총수신이 1조9000억 원 축소한 데 데 이은 두 달째 감소다.

항목별로는 정기예금이 5조9182억원 급감해 감소폭이 가장 컸다. 요구불 예금은 1조5284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은행 수신이 두달 연속 감소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12월, 2009년 1월에 이어 3년 만이다. 당시에도 감소폭은 이번만큼 크지 않았다. 2008년 12월에 8168억 원, 2009년 1월에 1조9000억 원 각각 줄었다.

신한은행은 총수신이 5조원이나 축소됐다. LG카드 우선주 상환자금 3조7000억 원이 지난달 예금에서 빠져나간 것을 고려해도 수신이 1조3000억 원이나 줄었다. 우리은행은 정기예금이 1조5000억 원, 요구불예금이 1조3000억 원 가까이 감소했다.
이 은행은 지난해 12월에도 총수신이 1조5000억 원 가량 적어졌다.

기업은행도 지난달 총수신이 2조4000억 원 가량 줄었다. 5대 은행 중 국민은행만 유일하게 수신이 늘었다. 증가액은 373억 원에 그쳤다.

은행 수신 감소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계대출과 실질소득 축소 여파로 분석된다. 예금을 깨 생활비로 충당하거나 빚을 갚는 사람이 많이 늘어났다는 의미다.

정부의 '2011년 가계금융조사 결과'를 보면 가구소득 평균은 지난해 6.3% 늘었지만 대출은 14.1% 급증했다. 대출 원리금 상환액은 무려 22.7% 늘었다. 더구나 지난해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고작 0.19%포인트 올라 연 4.09%에 불과했다. 가계대출 금리는 0.47%포인트 급등해 5.82%에 달한다. 예금을 깨 빚을 갚은것이 재테크 측면에서 유리해진 상황이다.

채무 상환용 예금 깨기 정황은 대출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지난해 매달 급증하던 가계대출이 새해 들어 크게 줄어 지난달 5대 은행의 가계대출 감소액이 무려 2조109억 원에 달한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정영식 수석연구원은 "은행 계좌에서 돈을 빼 펀드 등에 집어넣지 않았다면, 예금 감소는 생활비 충당이나 대출 상환 목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추이를 더 지켜봐야겠지만 예금 감소세가 심상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불황 여파로 예금을 깨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경닷컴 산업경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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