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울린 무료 콘서트…"노숙자도 클래식에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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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민 씨 지휘 NYCP 공연 박수갈채
지난 5일 미국 뉴욕 맨해튼 헤븐리레스트 교회. 플루트를 위해 편곡된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카프리치오소’가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NYCP) 챔버오케스트라의 현악기 선율과 함께 울려퍼지자 청중은 음악 속에 빠져든 듯 살며시 눈을 감았다. 일요일 오후 무료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별 기대없이 찾아온 공연이었다. 하지만 지휘자 김동민 씨의 열정적인 지휘 아래 7개 국적의 연주자들이 완벽한 하모니를 쏟아내자 관객들은 뜻밖의 감동에 박수 갈채를 보냈다. 이날 협연자인 신시내티오케스트라 플루트 부수석 최나경 씨도 눈물을 글썽였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좋아서 음악을 하던 시절이 떠올라서”라고 했다.
NYCP의 2011~2012시즌 세 번째 공연인 이날 연주회는 현지 언론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도, 만원사례를 이루지도 않았다. 그저 알음알음 찾아온 평범한 음악 애호가들이 아담한 예배당의 3분의 2 정도를 채웠을 뿐이다. 그러나 이들이 받은 감동은 카네기홀이나 링컨센터의 유명 오케스트라 공연에 못지않아 보였다.
자신을 전문 피아니스트라고 밝힌 레이 버카르트씨는 “지난 11월에 이어 두번째로 NYCP 공연을 찾았다”면서 “고전음악과 현대음악을 적절히 조합한 선곡이 굉장히 균형잡힌데다(eclectic) 음악과 장소가 어우러진 자연스러운 느낌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버카르트씨와 동행한 알렌 헨즐러씨는 공연이 끝난 후 오케스트라 관계자에게 “기부를 하고 싶은데 수표를 어디로 보내면 되냐”고 묻기도 했다.
NYCP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인디애나대에서 비올라와 지휘를 전공하던 김동민 음악감독(40)이 2009년 “부자부터 노숙자까지 누구나 최고 수준의 음악을 감상할 권리가 있다”는 취지로 만든 챔버오케스트라다. 김 감독의 오랜 친구이자 유명 베이시스트인 다쑨 장 텍사스주립대 교수가 리더를 맡는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젊은 음악가들이 최소한의 출연료만 받고 다수 참여했다.
NYCP는 맨해튼 뉴저지 브롱크스 등 뉴욕 전 지역을 돌며 시민들에게 무료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출연료 등 재원은 기부로 충당한다.
세계 최고 지휘자의 꿈을 키우던 그가 세상의 성공 기준을 버리고 무료공연에 나선 건 인디애나 음대 도서관에서 노숙자 행색의 한 할아버지를 만나고부터다. 끼니도 때우지 못했을 것 같은 할아버지가 도서관에서 매일 두 시간씩 음악을 듣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이 할아버지에게는 배를 채우는 것보다 음악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서 ‘하늘이 주신 음악적 재능을 이런 분들을 위해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지휘자로 성공할수록 할아버지와 더 멀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그는 박사학위도 끝내지 않은 채 무작정 뉴욕으로 건너왔다.
김 감독은 “함께할 음악가들을 모으는 게 가장 쉬웠다”고 했다.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져 있는 데다 모두들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수필가 고(故) 피천득 씨의 외손자인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제키브, 세계적 비올리스트 킴 카슈카시안 등 하루 공연에 1만 달러는 족히 받을 스타급 연주자들이 교통비만 받고 협연에 나서줬다. 김 감독은 “카슈카시안의 경우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유명한 비올리스트이지만 스스로 ‘음식을 위한 음악(Music for food)’이라는 비영리단체를 운영하고 있어 NYCP의 취지와 고충을 누구보다 이해하는 음악가”라고 전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