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손’ 외국인을 잡기 위한 증권업계의 경쟁이 과열양상을 보이고 있다. 전용회선을 이용해 하루에만 몇 만건씩 주문하는 ‘고빈도 매매(극초단타 매매·HFT)’가 업계의 중요한 먹거리로 떠오르면서다. 비용에 민감한 이들 고빈도 매매자를 유치하기 위해 수수료 덤핑이나 ‘미끼영업’에 나서는 업체도 나오고 있다.

◆수수료 3년 새 ‘반토막…’

고빈도 매매란 고성능 컴퓨터로 초단시간에 주문을 쏟아내 수익을 얻는 거래다. 주문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미국 증시 거래량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2007년 이후 본격적으로 확대됐다. 미국이나 홍콩에 본사를 둔 헤지펀드나 트레이딩업체들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주문 속도가 생명인 만큼 증권·선물사의 직접 접속(DMA) 서비스를 주로 활용한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국제영업부서를 두고 DMA서비스를 제공 중인 증권·선물사는 10여개다. A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1~2년 사이 후발업체들의 공격적인 영업으로 시장 판도가 급변하고 있다”며 “거래소-투자자 직접접속을 허용하지 않는 국내 상황에서 주문 속도 경쟁은 한계가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VIP 고객을 잡으려면 결국 수수료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빈도 외국인 대상의 수수료는 최근 3년 사이 7~8bp에서 3bp 이하로 반토막이 났다. B증권사 국제영업부장은 “사실상 증권사 수익이 나지 않는 수준이기 때문에 이대로 가다간 비즈니스를 접는 곳도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파생시장 외국인 장악 손쉬워져

한 대형 선물사의 경우 거래량과 상관없이 수수료 상한선을 두는 방식으로 고객을 유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주문을 많이 할수록 유리해 전체 시스템에 과부하를 줄 우려도 제기된다. C증권사 관계자는 “한 업체는 파격적인 수수료 조건을 내걸고 선물시장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큰손을 다른 증권사에서 뺏어와 입소문을 탔다”며 “타사 고객에게 ‘몇 밀리세컨드(1㎳=1000분의 1초)에 맞춰주겠다’며 접근하는 미끼영업도 흔하다”고 전했다.

신규 고객 발굴이 어려운 이유는 지난해 8월 급락장에서 손실을 입고 떠난 외국인이 많기 때문이다. 한정된 고객을 놓고 업계가 경쟁하다 보니 기존 외국인 입장에서는 국내시장 장악이 더 쉬워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코스피200옵션시장에서 외국인 거래 비중은 2010년 32%에서 지난해 38%로 늘었다. 외국인이 하루 2만건 초과 주문 계좌의 5분의 4를 차지할 정도로 고빈도 매매를 장악하고 있어서다.

증권사들의 ‘레드오션 경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한 전문가는 “향후 옵션 승수가 상향되면 시장의 일시적 불균형이 발생하면서 고빈도 매매자들의 수익 기회가 늘 것”이라며 “미리 입지를 다지기 위해 증권사별 수수료 조건을 회람하는 외국인 고객이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