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행사 전문 벤처기업인 온오프믹스의 양준철 대표(27)는 10여년 전 쇼핑몰 관련 정보기술(IT) 기업에 몸담은 적이 있다. 당시 그 회사 대표였던 A씨는 23세에 창업해 정부지원 벤처자금으로 10억원을 받았다. 하지만 A씨는 사업에 자금을 투입하는 대신 외제차를 타고다니며 개인 재산을 늘리는 데 몰두했다. 양 대표는 “3D 쇼핑몰 기술이 워낙 매력적이어서 창업에 참여했지만 대표가 제멋대로 회사를 운영하는 바람에 그만둬버렸다”며 “개인적으로도 1000만원의 빚을 떠안고 나왔다”고 말했다.

벤처 기업인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은 ‘도덕적 해이’다. 한국 벤처업계에선 유난히 도덕적 해이로부터 비롯된 사기, 횡령, 배임 문제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의 원인을 ‘주먹구구식 계약 관계’로 꼽고 있다. 인원 수가 적고 대학 선후배 등 지인들과 창업하는 사례가 많다 보니 법적 계약관계 형성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얘기다.

◆‘막연한 신뢰’의 위험

"우리끼리 무슨 계약서야"…한국식 情은 사업 망치는 지름길
국내 대기업에서 일하는 S씨(31)는 과거 IT 벤처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경력이 있다. 그는 2008년 친구들과 함께 동영상 광고 사업을 준비했다. 멤버 전원이 학생이었던 탓에 기본 자금은 벤처경진대회에서 받은 상금으로 충당했다. 문제는 상금 용도를 분명히 하지 않은 데서 일어났다. 사업 아이템을 제공했던 한 친구가 다른 사람들 몰래 다른 창업대회에 출전해 받은 상금을 가져가 버린 것. 사업이 본격화되기도 전에 감정을 상한 이들은 1년 만에 팀을 해체했다.

한국에선 벤처 창업자들끼리 초기 단계부터 계약서를 작성하는 일이 드물다. 벤처기업 특성상 회사 경영의 모든 내용을 일일이 문서화하기 힘들다는 측면도 있다. 실제 창업일선에서도 소수 인원이 사업을 꾸리면서 “우리끼리 계약서를 작성할 필요가 있느냐”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창업동지일지라도 모두가 한마음이 되기는 어렵다. 독자적 기술을 개발하려는 사람도 있고 기술보다는 수익을 내는 데 더 관심이 있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취업 이력서에 한 줄을 추가하기 위한 사람도 있다. S씨는 “창업 초기에 막연한 신뢰를 강조하기보다는 서로 지켜야 할 원칙과 기준 등을 명확히 문서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맞춤형 실무컨설팅’ 필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벤처 육성을 위해 이 같은 계약, 법률 관계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창업자 대다수는 사업 아이템이나 아이디어에 초점을 맞추고 그 이외의 부분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벤처기업에 대한 지원은 사업자금을 대주거나 사무실 공간을 빌려주는 데 그치고 있다. 김진수 중앙대 창업경영대학원 교수는 “종합지원센터들을 재정비해 자금만 지원할 것이 아니라 창업자들이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문제들에 대한 맞춤형 컨설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창업자와 개발 이외의 실무를 담당할 인력을 연결시켜줄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로선 엔젤투자자들이 이런 역할을 떠맡고 있는 실정이다. 벤처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기업인 패스트트랙 아시아의 김범섭 기술총괄이사는 “미국의 ‘와이 컴비네이터’처럼 창업자와 엔젤투자자를 연결해주고 스타트업 상호 간에도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인큐베이터 기업들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승우/은정진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