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석 기술문화연구소장 "아이디어만 있고 사업가적 실행력 없으면 창업 100% 실패"
“무조건 창업을 독려하는 최근의 분위기는 위험하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26일 기자와 만난 류한석 기술문화연구소장(41·사진)의 어조는 단호했다. 류 소장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소프트뱅크미디어랩 소장과 한국콘텐츠진흥원 뉴미디어 창업스쿨 책임교수 등을 맡으며 300곳 이상의 벤처기업들을 상대로 컨설팅을 했다. 그는 “300개 벤처기업 가운데 90%는 망했고 9%는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는 상황”이라며 “감정적으론 안타까웠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실패가 빤히 내다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취업난이 창업난 불러와”

그가 벤처 인큐베이팅을 그만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속으로 ‘안 될텐데’란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웃으며 ‘잘되길 바란다’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괴로웠다”고 털어놓았다. 창업을 도왔던 사람들이 실패해 고생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도 힘들었다고 한다.

최근 ‘제2의 벤처붐’이란 표현이 나올 정도로 창업 열기가 고조된 데에도 우려를 나타냈다. 류 소장은 “2000년 전후에 불었던 닷컴열풍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며 “지금의 창업 열기는 취업난으로 부풀어올려진 측면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창업을 하는 사람의 숫자보다 창업을 통해 성공한 사람들의 숫자가 더 중요하다”며 “다른 기회를 찾지 못해 반쯤 떠밀려 창업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놓고 벤처붐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창업의 위험성이 높아지는 요인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우선 △정부의 벤처 육성 정책이 천편일률적인 교육과 단순 자금 지원에 그치는 등 실효성이 없고 △개인들이 갖고 있는 창업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데다 △창업을 하더라도 대기업 하청업체로 전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것이다. 류 소장은 “이것들이 모두 바뀌기 전까지는 진정한 의미의 벤처붐이 일어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아이디어보다는 실행력이 우선”

류 소장은 지금 창업에 나서는 사람이라면 ‘실행력’을 갖고 있는지 스스로 사전 점검을 해볼 것을 당부했다. 아무리 기발한 아이디어를 지녔더라도 실행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패한다는 것이다. 그는 “창업은 지식이나 경험보다 타고난 역량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며 “사업가적인 자질을 갖고 있지 않다면 섣불리 뛰어들지 않는 편이 좋다”고 전했다. 또 “실용적 아이디어나 기술이 필요하다면 그걸 가진 사람을 채용하면 된다”며 “벤처기업의 어려움은 자금 압박이나 구인의 어려움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결국 본질적 문제는 창업자의 자질 여부”라고 말했다.

문제는 실패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실행력을 가늠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류 소장은 “자신의 역량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알량한 아이템이나 아이디어만 갖고 막연한 자신감에만 젖어 있다가는 100% 실패한다”고 경고했다.

이승우/고은이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