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는 왕진 가방, 다른 손에는 생선이며 채소 장바구니를 들고 있는 중년남자.

재일교포 3세인 조희칙(趙喜則.일본명 마쯔야마 요시노리.55)씨는 명함을 두 장 가지고 다닌다.

일본인 관광객만 상대하는 마쯔야마 의원을 운영하는 의사이자 밤에는 보기드문 간사이요리 전문점 사장이다.
[인터뷰] 조희칙 "환자 돌보다 밤 되면 요리하는 이중생활 6년째"
할머니 할아버지의 고국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가졌던 그는 18세때 아버지와 함께 한국에 왔다.

1977년 서울대 치대에 입학했다가 2년 후 고려대 의대에 다시 진학한 그는 한국어를 몰라 수업의 절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전두환 대통령 시절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보안사에 간첩혐의를 받고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일주일만에 풀려 나기도 했다.

"재일교포로 한국에서 살아가는 건 힘든 일이었습니다. 정말 독하게 공부했죠" 졸업후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알수없는 이끌림으로 일본에서 개업하려던 꿈을 접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에게 한국은 어떤 느낌의 나라였을까.

"처음 한국에 왔을때 받은 느낌은 '어둡다'가 전부였습니다. 당시 한국과 일본은 경제적으로 격차가 컸기 때문에 쌀도 채소도 부족했어요. 일본에서는 잘먹고 지냈는데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먹거리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요리를 해먹어야겠다 생각했죠"

신사동 한 유명 성형외과에서 일할 당시 환자들은 그가 일본인이라는데 거부감을 느꼈다가도 그의 실력을 보고는 입소문을 냈다.

그러다 외국인 관광객을 치료해주는 단체를 알게되면서 그것을 계기로 일본인 관광객을 치료하게 됐다.

그뒤 2002년 한일월드컵과 한류열풍으로 일본인 관광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유명세를 탔다.

지금도 그는 전화만 받으면 새벽시간도 마다하지 않고 서울시내 호텔 어디든 왕진을 간다.

"아픈 관광객 10명중 9명은 급성 위장염, 감기 등 비교적 가벼운 질환이라 큰 문제가 안됩니다. 하지만 그중 1명은 심각한 질환이라 항상 긴장을 늦출 수 없죠"

실제 보호자가 없는 관광객이 맹장수술을 하게 됐을때는 그가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한 적도 있다.

그게 끝이 아니다. 의료진과 통역을 하느라 밤새 병원을 지킬 때도 있다.

하지만 그가 운영하는 요리점 '야스라기'는 손님들과의 약속을 철석같이 지키기 때문에 밤을 샌 날도 손님을 위해 장을 보러 시장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의사로서 명성을 떨치던 그가 왜 '요리 하는 의사'의 길을 택해 스스로 고생을 자처한 걸까.

"의사 일만 해도 충분히 먹고살 순 있어요. 그렇지만 전 요리에 관심이 많고 제가 만든 요리를 손님들이 만족해하며 드실때 큰 만족을 느낍니다. 한국에도 정통일식집을 표방하는 곳들이 많이 있지만 그 맛이 일본 본토의 맛과는 많이 달라요"
[인터뷰] 조희칙 "환자 돌보다 밤 되면 요리하는 이중생활 6년째"
"이자카야가 아닙니다. 오사카에 가서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만듭니다"

한남동에 위치한 야스라기에는 보통 일식집에서 경험하던 것과는 다른 규칙이 몇가지 있다.

오뎅을 먹을때 국물을 마시지 말 것. 오뎅은 간장이 아닌 가라시(노란 겨자)를 찍어먹는다.

지리 또한 국물을 마시지 않는다. 건더기는 유자와 간장으로 만든 소스에 찍어먹고 남은 국물에는 죽을 만들어서 준다.

고집스러우리만치 일본 간사이 정통식을 표방하는 그는 가게에 손님이 붐비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예약도 최대 2~3팀만 받는다. 모든 요리를 그가 직접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요리를 해내가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대접을 받기 위해 예약을 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만족시키는게 철칙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불쑥 찾아온 손님은 다소 매몰차게 대한다. 직설적인 그의 말투 탓에 '불친절한 식당'이라고 생각했던 손님들도 나중에는 '앞으론 주는대로 먹겠다'며 다시 찾기 일쑤.

한때 2~3명씩 쓰던 종업원들도 그의 깐깐함을 견디지 못하고 다 그만뒀다. '의사가 운영하는 요리점이 불결해서야 되겠냐'며 행주도 한번 쓰고 세척하는 등 온갖 '유난'을 떨었기 때문이다.

냉동 식자재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 그는 다코야키나 오코노미야키를 만드는 반죽비법을 그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 그에게 가장 안타까운 것은 문어(다코)가 들어가지 않은 다코야키가 다코야키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길거리 음식으로 전락한 것.

독도는 엄연히 한국땅…일본에서는 소수 똑똑한 사람들만 한국땅이라고 생각

3·1 절을 즈음해 다소 민감할 수 있는 한일관계에 대한 질문도 건네봤다.

조희칙 씨는 김치를 한국사람보다 더 잘 만들고 김치찌개 된장찌개를 즐기지만 좀더 나이가 들면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생활하고 싶어했다. 아직은 어린시절을 보낸 일본에 대한 애착도 많아 1년에 2번씩은 꼭 일본을 찾는다.

일본 대지진이 났을 당시에는 지진복구 의견 게시판에 활발히 의견을 게시하며 마음으로 그들을 불쌍히 여겼다. 수습하는데 몇십년이 걸릴거라고 단언하는 그는 그렇지만 독도 땅에 대해서는 확고했다.

"일본 사람 대부분은 독도가 한국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소수 똑똑한 사람들만이 한국땅이 맞다고 생각할 뿐이죠. 그렇지만 독도는 분명히 한국 영토가 맞습니다"
[인터뷰] 조희칙 "환자 돌보다 밤 되면 요리하는 이중생활 6년째"
요리점에서 몇시간 동안 힘들게 고생해도 왕진 한번 다녀오는 것보다 적은 수입을 올리지만 야스라기를 지키는 그만의 신조는 무엇일까.

"요리를 잘 만드는 기술은 두번째입니다. 무엇보다 정성이 먼저죠. 맛있게 만들어 한국인들에게 일본 정통의 요리를 소개하고 훗날엔 일본에 가서 한국의 맛을 알릴 생각입니다. 의사로서의 계획이요? 어차피 같은 기술자인데 평생 해야죠(웃음)"

한경닷컴 이미나 기자 helper@hankyung.com / 사진 변성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