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존경받는 기업의 조건
가장 존경하는 기업을 묻는 질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유한양행이라고 답한 지도 꽤 오래되었다. 오류를 바로잡을 때도 지났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다. 물론 유한양행이 나쁜 기업은 아니다. 기업에 좋고 나쁜 구분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총독부 치하인 1926년에 창업해 지금껏 생존하고 있는 것만 해도 이 회사는 합당한 존경을 받을 만하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다. 유한양행은 제약업계를 리드하는 기업도 아니요 신약개발로 인류를 생로병사의 질곡에서 해방시켜주는 그런 기업도 아니다. 힘겹게 버티고 있을 뿐인 로컬 제약사의 하나다. 창업자가 사회공헌활동에 일찍 눈을 떴다는 것외에 기업활동 그 자체에서는 탁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어떤 기업이든 좋은 기업 혹은 존경할 만한 기업이라는 특별한 호칭으로 불리려면 무엇보다 업의 본질에서 인류에 공헌하는 가치를 만들어 내야 한다. 최근 포브스에 의해 세계 최고의 존경받는 기업에 오른 애플도 그런 경우다. 오늘날 우리가 존경한다고 할 만한 기업은 모두가 인류의 삶에 새로운 희망의 빛을 비추었거나 크나큰 즐거움을 주었거나 각박한 삶에 풍요를 가져다준 기업들이다. 그것은 기업 활동의 본질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시장 가치다.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이윤을 창출함으로써 사회와 국가에 기여하는 것은 기업이 사회에 지는 2차적 책임이다.

유한양행은 좋은 기업이기는 하지만 이런 조건을 충족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 한국의 제약 산업부터가 그렇다. 제약 산업은 아쉽게도 선진화는커녕 농업처럼 정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낙후 산업이 되고 말았다. 일부에서 FTA를 반대하는 이유로 제약산업 보호를 내세울 정도다. 대부분 제약사들이 외국회사들이 만든 신약의 복제품을 주로 생산한다는 점도 부끄러운 일이다. 복제약이나 카피약을 업계에서는 제네릭이라는 모호한 단어로 불러주기를 바란다는 것도 그렇다.

특허는 대중의 오해와는 달리 개인의 지식을 인류 공동의 지식으로 만드는 공개된 절차다. 특허권자는 배타적 권리를 받는 대신 발명품의 제조 과정을 상세하게 공개함으로써 자신의 지식을 인류 공동의 지식으로 내놓는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특허를 받는 조건으로 공개한 제조명세서가 있기에 그나마 복제약이라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 한국 제약사들이다. 이때문에 제약사들 간의 경쟁이라는 것도 불법 편법을 오가는 리베이트 경쟁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 제약업은 아직 그런 단계다. 지난주부터는 약가인하 문제로 초비상이 걸려 있다. 이런 일을 부끄럽다고 하지 않으면 무엇을 부끄럽다고 해야 하나. ‘존경하는 기업’이라거나 ‘보호가 필요한 산업’이라는 단어가 실로 우스꽝스럽게 되고 말았다.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은 40년 전의 삼성전자와 유한양행이다. 이미 성인이 된 유한양행과 당시 갓 출생신고를 한 삼성전자는 70년대 초반만 해도 유사한 사이즈의 소규모 기업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삼성전자는 세계적 기업이다. 이 회사가 만드는 상품은 세계인들에게 크나큰 즐거움을 주고 있다. 소비자에게 큰 즐거움을 줄수록 기업은 커진다. 그 결과가 154조원의 매출이며 무려 20조원의 순이익이다. 유한양행은 6000억원대 매출에 1000억원대 순이익에 그친다. 몇백배 단위로 차이가 난다. 사회 공헌의 제1요소라고 할 고용에서의 차이는 길게 말할 것도 없다. 삼성전자는 국내외에서 거의 20만명을 고용하고 있다. 1500명의 유한양행과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삼성전자는 올해 1만3000여명을 채용한다. 유한양행은 100명 내외다. 간접고용까지 합치면 이 차이는 더 벌어진다.

업의 본질에서도 그렇다. 유한양행은 복제약을 만들지만 삼성은 애플보다 더많은 원천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사회공헌이나 책임 부문에서는 더욱 비교가 안 된다. 삼성은 유한양행의 순이익보다 많은 연간 1400억원 이상을 거의 매년 사회공헌에 쓴다. 그런데도 한국의 얼치기 강단 좌파들은 존경과 질시를 제멋대로 뒤섞어 그 반대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이들은 오로지 소유주에 대한 적개심만을 선동해 왔다. 지금 정치권을 진동하는 대기업 개혁론이 그런 캠페인의 결과다.

정규재 논설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