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일감이 없다…주물·도금 '공장 임대' 쏟아져
인천의 주물업체 K사. 이 회사의 마당에는 쇠틀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주물은 벌겋게 끓는 쇳물을 모래틀에 부어 원하는 제품을 만드는 공정인데 이 모래틀을 만드는 게 바로 쇠틀이다. 쇠틀은 공장 안에 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일이 줄다보니 밖으로 빼낸 것이다. 이 회사는 최근 6개월 새 인원을 55명에서 33명으로 40% 줄였다. 내국인을 40명에서 30명으로 감축했을 뿐 아니라 ‘귀하신 몸’ 외국인도 15명에서 3명으로 대폭 줄였다.

이 회사의 L사장은 “한 명의 근로자도 아쉬운데 워낙 일감이 없다보니 고육지책으로 이런 자구책을 썼다”고 밝혔다. 선박 부품을 만드는 이 회사는 3년 전까지만 해도 연간 생산량이 1800t에 달했으나 점차 오더가 줄기 시작해 최근에는 연 수주량이 1000t 안팎에 머물고 있다.

이 회사처럼 일감이 줄자 구조조정에 나서는 중소기업이 속속 생기고 있다. 건설 불황 여파로 내수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는 데다 유럽 재정위기 등의 여파로 선박 기계 수출도 녹록지 않은 데 따른 것이다.

◆구조조정 나서는 중소기업 늘어

中企, 일감이 없다…주물·도금 '공장 임대' 쏟아져
인천 남동산업단지의 공장을 팔고 최근 김포의 임차공장으로 이전한 전기업체 S사는 인원을 50명에서 16명으로 3분의 1로 줄였다. 이 회사의 S사장은 “일감도 없거니와 수주해도 적자만 쌓여 부득이 공장을 팔고 인원도 대폭 감축했다”고 밝혔다. 남동공단의 도금업체 S사는 가구용 손잡이 도금을 주로 해왔는데 일감이 줄자 주 1~2회는 종업원을 조기 퇴근시키고 있다. 이 회사의 K사장은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해 왕십리 등을 거쳐 30년 넘게 도금업종에서 일해왔지만 지금 같은 불황은 처음”이라고 하소연했다. 이 회사는 직원이 최근 1년 새 12명에서 8명으로 줄었다. 생산제품을 납품하는 1t 트럭 운전기사마저 내보내고 사장이 트럭도 직접 몰고 있다.

◆임차료 아끼려 공장 쪼개 임대

반월과 시화산업단지를 연결하는 대로인 별망로의 주요 사거리엔 ‘공장 급매’ ‘공장 임대’ 등을 알리는 수많은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서울우유 사거리에는 ‘전자공장 360평 높이 12m 호이스트 있음’을 비롯해 ‘500평 통임대’ ‘급매 대지 500평 건물 700평 도금 PCB공장’ 등의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산업단지에 나붙는 공장 임대·매매 현수막은 중소기업의 불황을 보여주는 신호 중 하나다. 활황일 때는 이런 현수막을 걸 필요가 없다. 임대나 매매 매물이 나오기가 무섭게 소진되기 때문이다.

소형공장 임대 현수막도 속속 나붙고 있다. 안산스텐레스 사거리에는 ‘110평 호이스트 7.5t’ ‘150평 호이스트 2.8t’ ‘55평 2.8t’ 등의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반월·시화산업단지의 200평 이하 소형공장은 수도권 재개발지역이나 보금자리 대상지역에 있는 작은 공장들이 선호해 임대 광고가 나붙기 무섭게 소진되던 곳이다.

이곳에서 만난 C부동산의 박모 이사는 “공장을 확장하려고 내놓은 업체도 있지만 불황여파로 내놓은 물건도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부 공장들은 임차료를 아끼려고 임차공장의 일부를 쪼개 다시 임대하는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안정 찾을 대책 마련해야

중소기업의 불황은 통계로도 뒷받침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1407개 중소제조업체를 대상으로 가동률을 조사한 결과 지난 1월 평균가동률은 작년 12월에 비해 1.7%포인트 하락한 70.4% 수준으로 나타났다. 겨우 70% 선에 턱걸이한 것이다. 이는 2009년 8월 이후 2년여 만에 최저치다.

홍순영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불황 국면에서 중소기업인들이 심리적인 안정을 찾고 연쇄도산을 막으려면 정부가 중소기업 자금문제에 대해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는 신호를 강력하게 보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인천·반월·시화=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