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숨겨진 벽화
월스트리트저널은 2007년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사라진 7대 불가사의’를 선정했다. 고고학자들과 각국 탐사팀이 오랫동안 찾아 헤매온 신비의 유산들이다. 여기에는 1708년 컬럼비아 해안에서 침몰한 스페인 보물선 ‘산호세’와 1716년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러시아 표트르 황제에게 선물한 보석의 방 ‘앰버 룸’, 완벽한 미의 상징으로 알려진 고대 이집트 왕비 네페르티티의 무덤, 예수가 최후의 만찬 때 사용한 성배 등과 함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렸다는 벽화가 포함돼 있다. 바로 ‘앙기아리 전투’다.

‘앙기아리 전투’는 다빈치가 전성기에 혼신을 다해 그린 걸작으로 추정된다. 사연은 이렇다. 1494년 메디치가(家)를 축출한 후 공화국을 세운 피렌체시민들은 시의회당(베키오궁전)을 짓기로 하고,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에게 벽화 제작을 맡겼다. 쟁쟁한 두 화가를 경쟁시켜 최고의 작품을 얻어내려는 의도였다. 다빈치가 맡은 주제는 밀라노를 상대로 피렌체가 승리한 앙기아리 전투였다.

1505년 작업에 착수한 다빈치는 젊은 천재 미켈란젤로를 의식해 수없이 데생을 하고 새로운 물감을 개발하는 등 공을 들였다. 하지만 물감이 녹아내리는 문제가 생기자 그림을 완성하지 못한 채 밀라노로 떠나고 말았다. 다시 피렌체를 지배하게 된 메디치가가 건물을 증·개축하면서 벽화는 사라졌다. 대신 조르지오 바사리가 1563년 메디치가의 승리를 기념해 그린 벽화 ‘마르시아노의 전투’만 남았다.

상황이 바뀐 건 1975년이다.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의 마우리치오 세라치니 박사가 바사리의 벽화 속에서 ‘찾으라, 그러면 발견할 것이다(Cerca Trova)’라는 문구가 깨알처럼 적힌 깃발을 찾아낸 것이다. 그는 레이저 자외선카메라 등을 동원해 증·개축 이전 도면을 복원했고, 바사리 벽화 뒤에 ‘앙기아리 전투’가 있을 것이란 추론에 도달했다. 이번에 바사리 그림에 작은 구멍을 낸 후 내시경으로 숨겨진 벽화의 성분을 분석해 보니 ‘모나리자’를 그릴 때 다빈치가 썼던 특유의 물감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노(老)학자의 집념과 첨단기법 덕에 500년 가까이 묻혀 있던 작품의 실재(實在)가 밝혀진 것이다. 그림 속 단서와 정교한 추론으로 ‘사라진 불가사의’를 찾아냈다는 게 놀랍다. 그림의 전모를 드러내고 다빈치 작품이란 증거를 더 확보해야 하는 어려움은 있다. 그러나 벽화 뒤에 벽화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다른 불가사의도 언젠가 빛을 보지 말란 법은 없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