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자동차회사인 폭스바겐의 대외 홍보물에는 최근 들어 ‘모듈 아키텍처’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엔진 등 주요 부품을 덩어리째 가져와 조립한 것을 말한다. ‘레고식 생산시스템’이라고도 불린다.

◆레고 방식으로 신흥국 시장 공략

이달 초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모터쇼. 마르틴 빈터코른 폭스바겐그룹 회장은 그룹의 장기 비전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최신 기술을 모든 신차가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생산체제를 갖춰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고급 차 브랜드인 ‘아우디’부터 신흥국 저가 차량인 ‘스코다’까지 모두 동일한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생산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

1990년대 이후 새로운 차량을 개발한다는 것은 곧 신형 ‘플랫폼’을 만든다는 얘기와 동일했다. ‘차대’라고 번역되는 플랫폼은 엔진과 트랜스미션 브레이크 등으로 구성된 자동차의 기본 골격이다. 아우디에는 아우디만의 플랫폼이 존재했고, 소형 차량은 거기에 맞는 플랫폼이 따로 있었다.

그러나 신흥국 시장이 팽창하면서 기존 시스템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신흥국은 선진국 시장과 달리 나라마다 소비자들의 요구 사항이 제각각이다. 매번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어서는 채산성을 맞추기 어렵다. 신흥국 시장에 맞는, 좀 더 효율적인 생산방식을 고민하던 독일 자동차메이커들이 꺼내든 카드가 ‘레고식 생산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마력이 높은 자동차를 선호하는 시장을 공략할 경우 예전처럼 신형 플랫폼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차량에 ‘터보차저(turbo charger)’라는 고출력 장치를 덧대는 식으로 대응한다. 폭스바겐은 레고식 생산방식이 정착될 경우 신차 개발비용이 종전 대비 20% 이상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발등에 불 떨어진 일본 자동차회사

일본 자동차메이커들도 벤치마킹에 나섰다. 도요타는 품질을 향상시키고 생산비용을 줄이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부품 규격을 통일하는 설계 개혁에 착수했다. 닛산자동차도 주요 부품의 디자인을 가능한 한 단일화해 개발비용을 27%까지 줄일 계획이다.

친환경 차량 시장에서 밀려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일본 자동차회사들이 ‘레고식 생산시스템’에 주목하는 이유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레고식 생산방식은 일본 자동차메이커가 사활을 걸고 있는 하이브리드 차량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레고식 시스템은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환경오염 물질 제거 장치를 탈착하는 방식이어서 생산비용이 적게 든다. 미즈호은행은 “미래 친환경 차량의 대중적인 모델이 하이브리드카나 전기자동차가 아닌 레고식 차량이 될 가능성도 작지 않다”고 지적했다.

■ 레고식 생산방법

장난감 블록인 레고처럼 부품을 규격화해 필요에 따라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생산방식. 자동차, 컴퓨터 등을 제조할 때 주요 부품을 덩어리째 가져와 조립하는 것이 특징이다. 용도와 사용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부품을 만들어 신속하고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