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수베이, 4년 한국생활  들어보니…"에쓰오일 위기 속 성장, 運七技三이죠"
“발효 음식이 원래 중독성 있잖아요. 이틀만 안 먹어도 생각나요. 사우디에도 싸가려고 준비해뒀습니다.”

아흐메드 에이 수베이 에쓰오일 사장(사진)이 고향 사우디아라비아로 가져가는 것은 다름 아닌 김치다. 도가니, 과메기, 삼계탕, 진주비빔밥 등 좋아하는 한국 음식 중에서도 김치를 최고로 꼽았다.

2008년부터 4년간 에쓰오일 사장을 지낸 수베이 사장은 다음달 초 사우디 아람코 본사로 돌아간다. 그는 미국에서 대학을 나와 아람코에서 27년간 근무하며 일본 자회사 사장도 지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4년이 가장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다고 했다.

수베이 사장은 26일 서울 마포 에쓰오일 본사에서 고별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 생활의 소회를 털어놨다. 간담회에 앞서 팝송 ‘마이웨이’가 흐르고 수베이 사장의 활약상을 정리한 동영상이 나왔다. 창립 35년 만에 마련한 본사 사옥, 불황기에 1조3000억원의 투자를 결정해 이룬 온산공장 파라자일렌(PX) 확장 사업, 무역의날 기념식에서 금탑산업훈장을 받는 모습, 직원들과 함께했던 신년 산행까지. 수베이 사장은 “눈물을 참느라 혼났다”며 “사우디 가서도 한 달간은 한국 생각을 하면서 눈물을 흘릴 것 같다”고 했다.

그가 꼽은 한국에서의 최대 성과는 재임 기간 중 두 배의 매출 성장이나 사상 최대 실적과 같은 계량적 업적이 아니었다. “비즈니스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이고 그것을 만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이 절로 하고 싶을 만큼 에너지가 넘치는 활기찬 분위기가 위대한 기업을 만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는 “선수들 간 유대감과 친밀도만큼 경기 점수가 나온다”며 “개인적으로 가장 큰 성과는 그렇게 기업 문화를 바꿔놓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그에게도 지난해는 힘겨웠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 쓰나미, 유럽재정 위기,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 이어졌고 중국은 침체되고 중동은 혼란스러웠다”며 “예측 불가능성이 높아질 때는 전망이 소용 없고 대비할 틈이 없어 경영자가 가장 긴장해야 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에쓰오일은 다행히 절묘한 타이밍에서 적절한 결정으로 성과가 좋았다”며 ‘운칠기삼’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고유가와 관련한 논란에 대해서는 “시장 수급과 관련된 게 아니라 지정학적 불안 요인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기업이 답을 낼 수도 없고 정부 규제가 해결책도 아니다”며 “합리적인 가격을 유지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업계, 정부, 지역사회 등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한국에서 이뤄놓은 성과는 후임자인 나세르 알 마하셔 신임 사장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수베이 사장은 “내 성과는 후임자가 더 열심히 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인센티브”라며 “긍정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알 마하셔 신임 사장은 지난 23일 사장에 선임됐으며, 이날 바로 울산 공장을 찾았다.

수베이 사장은 아람코 본사로 돌아가 총재 직속 조직에서 10년 후 아람코의 변신을 준비하는 중책을 맡는다. 그는 에쓰오일과 함께한 한국을 이렇게 기억했다. “지난 4년 동안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 늘 ‘나는 행운아’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은 역동적이면서도 아름답습니다. 전국 명산을 다니며 산해진미도 맛봤지만 한국은 여전히 비밀스러운 미의 나라입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