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은 동반성장을 말로만 외칠 뿐 고민조차 안 한다. 대기업의 이익만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발전적 해체 수순도 생각해야 한다.”(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 사퇴의 변)

“재벌에만 특혜를 주고 99%의 서민을 못살게 하는 이명박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 정동영 서울 강남을 국회의원 후보 지원 연설)

“지금 이대로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계속 하면 영세상인들 깡그리 다 죽는다. 재벌이 구내식당, 미용실, 체인점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이대로는 안 된다.”(정 후보, 유세 연설)

4·11 총선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29일부터 정치권의 ‘대기업 때리기’가 본격화하고 있다. 야당 대표와 일부 후보는 재벌 개혁을 내세우며 표심 공략에 나섰다.

총선에 사활을 건 정치권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출자총액제한제 재도입과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납품단가 인하, 일감 몰아주기 규제, 초과이익 공유제 등이 ‘경제 민주화’라는 명분 아래 등장했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재벌 해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데다 반기업 성향 정치인들이 19대 국회에 대거 입성할 가능성도 높아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과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날 정치권의 무차별적인 ‘대기업 때리기’와 포퓰리즘 공약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다. 한경연은 28명의 전문가가 참여한 ‘19대 총선 경제공약 평가 보고서’를 통해 “여야의 경제 공약 중 상당수가 포퓰리즘적이고 성장보다는 분배를 강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병일 한경연 원장은 “사실 확인도 없이 양극화의 모든 원인을 대기업 책임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대한상의는 ‘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법인세제 정책 방향’이라는 보고서에서 “정치권에서 주장하는 법인세율 인상은 국제 흐름에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상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법인세수 비중(2000~2009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경우 3.5%에서 2.8%로 평균 0.7%포인트 내렸지만 한국은 3.2%에서 3.7%로 0.5%포인트 올랐다고 설명했다. 영국 일본 대만은 법인세율을 낮췄고 미국도 세율 인하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한국만 ‘역주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현한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재벌 개혁 얘기는 민심 달래기용”이라며 “정치권은 출자총액제한, 순환출자 금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이 정작 서민과 중소기업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고 말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